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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은 이색의 후손이라는 예산의 이남규 고택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3. 8. 31.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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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건립)에 이산해의 손자 이구의 부인이 건립하여 1846년(중건)에 중건된 예산의 오래된 고택은 한말의 지사 이남규의 생가이기도 합니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1호으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채와 행랑채가 튼ㅁ자형을 이루면서 입구 쪽으로 면하면서 사랑채가 위치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 주택의 배치 형식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래간만에 수당 이남규고택을 보기 위해 탐방을 해봅니다. 이남규는 1906년 병오의병 당시 홍주에서 거의 하였던 민종식(閔宗植)이 일본군에 패하여 은신을 요구하자 숨겨 주었으며, 이 일로 인하여 의병과 관련 있다 하여 1907년 공주옥에 투옥되었다가 며칠 뒤 온양 평촌 냇가에서 아들 이충구(李忠求)와 함께 피살되다고 합니다.  

수당 이남규 고택은 남향으로 건립되었고 전체 배치는 ㄷ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행랑체가 튼ㅁ자형을 이루면서 안채의 서측편에 一자형으로 된 큰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남규 선생(1855∼1907)은 본관이 한산(韓山)이고, 1855년 서울 미동에서 태어나 1875년 향시와 사마시 양과에 급제하면서 관리의 길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향나무가 심어져 있는 고택은 머무를 수도 있는 한옥스테이로도 활용이 되고 있습니다. 

대청 좌측에는 1칸의 작은 사랑방이, 우측에는 2칸의 큰사랑방이 있는데 대청과는 3분합 맹장지 들어열개를 각각 달아 대청으로 출입하고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스승이기도 했던 이남규 선생은 면암 최익현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던 이남규 선생은  1893년 일본의 조선 내정간섭,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등의 사건에 반대하여 의병 활동을 후원하였다고 합니다.  

역사를 살펴서 올라가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연관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안채 앞에 있는 一자형의 행랑채는 2칸의 중문을 중심으로 동측 3칸에는 헛간을 드렸고 서측 2칸은 청지기방으로 꾸며두었습니다. 

청양하면 면암 최익현 선생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입니다. 반면 적게 알려진 이남규 선생은 고려 말 목은 이색, 선조 때의 이산해, 이광임 등을 배출한 가문의 후손으로 보령에 있는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이지함도 같은 본관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이 호국의 달이었죠. 행정안전부가 주최하고 충청남도 예산군이 주관하는 이번 행사는 ‘의로운 시작, 그날 이후’를 주제로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6월 4일부터 6월 6일까지는 ‘학예사와 함께하는 예산군 의병 역사 여행’으로 가족과 함께 의병 관련 유적지를 답사하는 역사 교육 활동을 진행한다. 수당고택, 예산 광수장터 등을 탐방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때론 이렇게 마당이 있는 집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수당 이남규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는 노란 꽃이 피어 있는 예산군에는 1910년 을사늑약 체결을 계기로 일어난 홍주의병의 2차 발원지인 광시장터와 의병활동의 중심지였던 수당 이남규 선생의 고택, 독립운동가 매헌 윤봉길 의사의 사적지 등 보존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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