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호국의 달에 앞서 찾아가본 부여 임천면 여행과 임천군 관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3. 6. 29.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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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다니다보면 군과 면지역의 구분이 모호할때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군이었던 곳이 면이나 읍이 되기도 하고 읍이었던 곳이 통합되어 군이라는 행정구역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100년이 지나면 한국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되어 있을겁니다. 

삼일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곳은 부여의 임천면이라는 곳입니다. 지난 5월 16일에는 부여군내 청년들이 운영하는 12개 팀과 임천면 상인회가 참여하는 임천만세장터 보부상 프리마켓을 열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장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때에 맞춰 장터만 잠시 열리는 만세장터지역이 이곳입니다. 평소에는 주차공간으로 활용을 하고 있습니다.  

임천면의 중심이 되는 곳은 바로 이곳으로 삼일만세 운동이 열렸던 곳이기도 합니다. 

금강 하류에 위치해 백제시대에는 웅진성과 사비도성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수운과 교통이 편리하여 시장이 성시를 이루었고, 인근 한산, 홍산, 정산등과 더불어 전국 8대 모시 생산지의 하나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만큼 일제강점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만세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토지와 곡식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사직단이 있는 문화관광자원의 보고이며 문화유적으로는 백제시대에 축조한 사적 제4호인 가림성과 황금새의 전설을 간직한 대조사도 이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부상과 관련된 행사도 열리지만 매년 1월 1일 성흥산 해맞이 축제가 가림성 정상에서 성황리에 치루어지고 있으며, 매년 4월 백제부흥운동을 하다 전사한 장졸들을 위령하는 충혼제도 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임천향교만을 방문했는데 최근에 새롭게 복원된 임천군 관아 형방청도 가끔씩 방문해보곤 합니다.  

요즘에는 대부분의 역사유적지에 화장실과 같은 편의시설이 있어서 여행이 용이해지고 있습니다.  

10칸 규모로 지어진 임천군 관아 형방청입니다.  임천군 관아의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임천초등학교에 객사가 들어선 시기인 1704년(숙종30)이전에 관아가 조성되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관아 건물들은 일제강점기 당시 행정개편으로 객사는 초등학교, 동헝과 내아등의 부속건물은 행정복지센터등의 관아건물로 사용하다가 사라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임천군 광아 건물은 마지막 형방청이 1980년대까지 임천경찰서로 사용되어 오다가 허물어지면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임천군 관아를 되살려 문화유산의 가치를 회복하고 보존하고자 옛 문헌자료 및 사진을 기초로 형방청을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임천군 관아 형방청이 자리한 바로 옆에는 임천면 행정복지센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랜역사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의 흔적이 행정복지센터 앞에 비로 남겨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임천군청이 있었으므로 임천읍내, 또는 군사(軍司)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임천면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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