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부여에 시로 걸어볼 수 있는 신동엽의 길을 걸어봅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3. 2. 2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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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는 백제의 도시라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된 것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이후가 아닐까요. 그렇지만 부여라는 공간은 시인 신동엽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신동엽이라는 시인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때가 있습니다. 시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저는 시를 가끔씩 읽는 편인데요. 신동엽의 시도 가끔씩 찾아보기도 합니다. 

도시마다 길의 이름이 정해지고 나서 유명한 사람들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길은 신동엽 생가에서 이어지는 신동엽길이기도 합니다. 신동엽길은 시가 스며든 길입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말하는가라고 외쳤던 신동엽은 현대적 의미의 시인이기도 합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랬기에 젊은 느낌이 남아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차공간은 넉넉하게 준비가 되어 있어서 이곳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차를 가지고 오셔도 됩니다.  

신동엽이라는 시인은 소박한 사람들의 정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데요. 이곳에서 신동엽은 1930년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민 신연순과 김영희 사이의 1남 4녀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이지만 오랫동안 국민학교라고 이름이 붙여져 있는데요. 1943년 부여국민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이 길은 예전에는 다른 모습이었을 겁니다. 흙을 밟을 수 있는 길에 주변이 탁트여 있지 않았을까요. 

부여 신동엽생가의 앞에는 바로 이 작품이 그려져 있습니다. 부여를 그린 것인지 몰라도 지도처럼 보입니다. 신동엽은 1950년대 말에 서울 돈암동의 처가에 아내와 아이들을 보내고 홀로 부여에 남은 신동엽은 병과 가난 속에서 독서와 습작에 몰두했다고 합니다.  

신동엽 문학관은 신동엽생가의 바로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비판하는 반면 원초적인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시로 그려낸 신동엽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서도 부여의 유물들이 발굴되었다고 하는데요. 한켠에는 그 흔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지금 가까운 사람에게 전화를 한 통해보세요.  

이곳에는 신동엽 시인이 쓴 주옥같은 시의 문구들이 바람에 날리듯이 걸려져 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그리하여, 다시 /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 한라(漢拏)에서 백두(白頭)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

양지바른곳에 자리한 신동엽생가에서 잠시 가져온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한숨돌려봅니다. 

신동엽 길과 신동엽 문학관, 신동엽 생가는 걸으면서 당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어린 소년이었으며 청년이었던 그 사람의 모습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시인이 살아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 있는 이곳에는 그가 쓴 시에는 전통적인 서정성과 역사의식의 결합을 구현했다고 평가받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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