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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의 시기에 중요한 요지였던 금산의 이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0. 6. 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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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이치라는 단어는 참 중요합니다. 이치라는 지역명은 배티재라는 곳이었습니다.  금강 상류지역의 금산은 신라와의 전쟁에서 백제의 동쪽 경계를 막는 요충지로 백령성과 장대리 고분군, 수당리 유적, 창평리 유적을 통해 지방 통치체제가 자리잡았던 곳이라고 합니다. 

 

비가 내리는날 이치대첩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마치 그날의 일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것과 같은 색다른 분위기의 공간입니다. 

이곳을 부르는 이름인 배티재는 한자로 이치라고도 부르는데 산과 산을 연결하는 곳은 전략상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래 주차공간이 넉넉한 곳이니 주차를 하고 위로 걸어서 올라오면 됩니다. 금산군에서 완주군으로 넘어가는 이곳 이치에서는 임진년 7월에 큰 전투가 있었습니다. 

저 멀리 대둔산에서는 자욱한 안개가 내려져 있습니다. 안개낀 가운데 이곳도 분위기가 남다릅니다. 당시 권율장군이 이끌던 군사의 수는 불과 1,500여명으로 2만명의 병력을 대적하기에는 열세였지만 지리적인 이점을 살려서 결국 왜군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열려 있는 공간인 안으로 들어오면 권율장군의 대첩비가 있습니다. 조선말인 1866년 금성면(錦城面) 상가리(上佳里)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 (大捷祠)를 세웠으나 1944년 6월 일제가 항일유적 말살정책으로 폭파되기도 했습니다.  

축축한 느낌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경건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1991년부터 성역화 계획의 일환으로 사당과 비각, 내삼문, 외삼문, 담장이 설치되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두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오면 대첩비각은 저 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치대첩은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인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힐만큼 의미가 크다는 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내삼문쪽으로 들어오면 충장사라는 사당도 나오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지금은 안으로 들어가볼 수는 없었습니다. 

권율장군은 왜군이 장점인 조총의 위력을 알고 있었기에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였고 군사들을 조총공격에 대할 수 있는 진형으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이치대첩지는 1984년 ‘권율장군이치대첩비’ 문화재자료 제 25호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 ‘이치대첩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 15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전투의 승리를 통해 호남지역의 곡창지대를 수호하고 나아가 청주성 전투, 진주대첩, 행주대첩 등의 승리를 이끌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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