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하면 우선 장례식장에서 사용하는 사진을 연상하는데요. 영정은 초상화로 인물화의 일부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상화를 일컬어 진(眞)·영(影)·상(像)·초(肖)·진영(眞影)·영자(影子)·사진(寫眞)·전신(傳神)·영상(影像)·화상(畫像)·영정(影幀)이라고 부릅니다. 그 시대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무척이나 중요한 자료로도 활용이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안에는 이귀와 그의 아들 이시백의 영정은 매담리자무실이라는 마을에 자리한 문중에서 제작한 것이라고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과 함께 동일한 초본을 옮겨 그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정은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자무실길61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귀와 그의 아들 이시백은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옹립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사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이귀는 1등 공신으로 그의 아들 이시백은 2등공신으로 등록되게 됩니다. 반신상 초상화로서 조선후기 초상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합니다.
초상화를 연구함에 있어서 가장 중시되는 시기는 조선시대로, 조선시대는 국초부터 유교를 실천적 지도 이념으로 표방하였다. 그리고 보본 사상(報本思想)에 근거를 둔 가묘(家廟) 및 영당(影堂)의 설립을 국책적으로 권장하였다고 합니다.
사우인 경모사가 있는 곳의 옆으로 올라가면 이시백의 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재실은 민가 형식이었지만 사우로 재건하였습니다.
경모사는 현대에 건립한 것으로 원래 이시백의 묘를 관리하고 해마다 제를 올리던 사우를 재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천안에서 유력한 가문으로 연안이씨가 세거하게 된 중요한 자료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제작된 초상화는 대상 인물의 신분에 따라 대략 여섯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이귀와 이시백의 영정은 공신상이라고 합니다. 공신도형은 나라에 일이 있을 때마다 공신호(功臣號)가 책록되고 곧 입각도형(立閣圖形)의 명에 따라 행해졌습니다.
영정의 표현 기법 면에서 살펴보면 전기(1392∼1550년)·중기(1550∼1700년)·후기(1700∼1910년) 등 3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영정의 초상화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닮지 않으면 곧 타인이라는 취지하에 대상 인물과 가장 흡사하게 그리기 위하여 초상화사들은 화력(畫力)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명당이라고 할만한 곳은 대부분 사대부나 왕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유명했던 사람의 묘자리에 가보면 정말 앞이 트여 있고 풍수지리적으로도 좋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수차의 전란으로 많은 수의 초상화가 산일되었지만 지금까지 이귀와 이시백의 영정은 보존이 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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