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의 한 지역이기도 한 삼용리의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용암리(龍岩里)·상룡리(上龍里)·하룡리(下龍里) 세 마을의 ‘용(龍)’자를 따서 삼용리(三龍里)라 부르고 있는 곳입니다. 서쪽에서 미호천(美湖川)이 남동류한다. 기후가 온난하고 수량이 풍부한 편이어서 평야 지대에서는 쌀이 생산되고, 동쪽 덕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구릉지에서는 잡곡류가 생산되는 곳입니다.
문화재로 사적 제344호인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鎭川三龍里百濟土器窯址)가 있는 곳이서 그 흔적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토기요지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 중간에 경주정씨 묵헌공 추모공원이 따로 있습니다. 큰 공원은 아니지만 진천군에서 경주정씨인 묵헌공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중에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주 정씨(慶州 鄭氏)의 시조 지백호(智伯虎)는 삼한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고 신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것이 경주정씨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진천군에 자리한 성씨인 경주정씨의 흔적을 만나보고 안쪽으로 더 들어오면 진천삼용리 백제토기요지가 나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백제시대 흔적찾는 둘레길을 조성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가마솥밥이 맛이 더 좋은 이유는 밀폐된 구조에서 밥을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릇 역시 밀폐된 공간에서 만들어야 높은 열을 받을 수 있기에 서서히 경질 가마의 제작을 위해 밀폐형 가마로 진화하게 됩니다.
가마에는 승염식(昇焰式)과 도염식이 있는데, 근대 이전에는 승염식 가마가 중심이었고 현대의 가마는 대부분 도염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진천 삼용리 백제토기요지는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토기를 만들던 곳이라고 합니다.
문화 유적 발굴 조사 중 확인된 가마터로서 우리나라에서 원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서기 3세기 이전의 것으로 알려진 두드림무늬토기, 즉 타날문토기(打捺紋土器)를 만들어 내던 백제 때의 대형 도요지가 바로 이곳입니다.
지금은 지역이 이렇게 정해져 있지만 이 부근은 토기를 생산하던 상당히 큰 시설이 자리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진천 삼용리 백제 토기요지는 1991년 2월 21일 사적 제344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발굴 조사가 끝난 후 원형 그대로 매립하였으며, 비슷한 시기에 있던 인근 덕산면의 산수리 요지보다 규모는 작지만 훨씬 고식(古式)이라고 합니다.
진천군은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사람살기도 좋지만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토기에서 사용하는 흙도 좋았기에 그렇지 않을까요. 발굴한 가마터에서 남쪽으로 약 1㎞ 지점에 토기의 태토(胎土)로 쓰기에 좋은 양질의 대규모 점토산지(粘土産地)도 확인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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