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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광산김씨가문을 세운 양천허씨 영모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6.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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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에서 김장생과 김집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고 합니다. 그 연결성을 따라서 올라가보면 바로 남해의 도시인 김해에 있습니다. 김해에 자리했던 금관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이 있습니다. 그 김수로왕과 결혼한 왕비가 바로 허씨입니다. 아유타국에서 건너와서 이 땅에서 터를 잡고 살은 것입니다.



지금 논산의 인물인 김장생과 김집이 있게 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이 크다는 양천허씨를 찾아가는 길은 풍광이 좋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아유타국에서 와서 왕후가 된 허황옥의 후손 중 허선문(許宣文)은 공암촌(孔巖 :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살면서 농사(農事)에 힘써 많은 양곡(糧穀)을 비축(備蓄)하였는데, 고려 태조(太祖) 왕건(王建)이 후백제(後百濟) 견훤(甄萱)을 정벌할 때 군량이 부족하여 사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군량(軍糧)을 보급해 주었다. 


이곳이 바로 양천허씨가 자신의 자식을 잘 키운 것을 기리며 제사를 올리는 영모재입니다. 


앞선 공으로 인해 허선문은 고려 건국에 대한 공으로 삼한 공신이 되었습니다. 공암이 1310년(충선왕 2)에 양천현(陽川縣)으로 지명이 바뀜에 따라 양천 허 씨(陽川 許氏)로 불리게 되었는데 그 양천 허씨의 후손 중 한 여성이 지금의 논산으로 내려와 정착했던 것입니다.


그녀의 후손 중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가 되었습니다. 


 논산 영모재의 건축 연대는 불분명하나 문채의 대들보에 ‘경인년 상량’이라고 쓰여 있어 연대를 추측해 볼 수 있으며, 재실 내부에는 1975년의 중수 기록인 「영모재 중수기」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2000년 충청남도에서 문화재자료 제367호로 지정된 논산 영모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며, 바닥이 1단 높게 조성되어 있다. 양천허씨에 대한 제사를 지낼 때 참배객들이 기거하는 고택과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 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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