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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의 생태와 주거가 스며든 봉황대공원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5. 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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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른 아침 김해를 사랑하게 만들만한 봉황대공원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봉황대공원은 마치 일본의 정원처럼 잘 조성된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금관가야의 역사는 적지 않게 알고 있었지만 직접 금관가야가 있었던 김해는 올해 처음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봉황대유적지는 여러번 들어본 적은 있지만 그곳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 공원이 이렇게 이쁘게 피어났는지 몰랐네요. 봉황대공원을 가실분들은 봄이나 여름 이른 아침에 가보세요. 여행지로서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관가야가 이곳에 자리했을때의 식생을 알 수 있도록 조성을 해두었다고 합니다. 


김해만의 설화가 숨 쉬는 왕도를 걷다 보면 봉황유적지와 수로왕릉, 가야의 거리 구지봉공원, 해반천과 연지공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구지봉공원과 수로왕릉, 연지공원등은 5월달에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곳은 금관가야인들이 무역등을 하기 위해 무언가를 저장해놓던 곳이라고 합니다. 


저곳은 적이 오는지를 살피기 위한 조망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올라갈 수 있도록 해놓지는 않고 금관가야가 이곳에 있었을 때를 상상해서 조성해둔 곳입니다. 


천천히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가 봅니다. 왕궁터 발굴지를 시작으로 한가로이 봉황대 돌계단을 밟아 오르면 길 양편으로 생명의 기운을 느끼다가 보면 황새장군과 여의낭자의 사랑이야기가 설화로 남아있는 황새바위와 여의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초여름의 녹음이 가득한 봉황대 유적지는 금관가야시대 사람들의 생활유적지로 이 이름은 구릉의 생김새가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다 해서 붙여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상에 오니 특이한 돌모양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물이 담겨 있는데요. 최근에 비가 왔던가요. 물이 고여 있네요. 


저 바위가 바로 황새장군의 이야기가 내려져 오고 있는 황새바위입니다.  김해지역의 9간(九干)이 구지봉(龜旨峰)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6개의 알을 수습하여 집에 가져오니 모두 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황새장군은 왕족은 아니지만 유력가문인 황정승의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어릴때 유치한 장난을 많이 하는데요. 황세와 여의는 의형제를 맺었다고 하는데요. 여자인 여의는 황세가 오줌멀리누기 시합을 제의하자 여의는 삼대줄기를 사용하여 위기를 넘겼는데 이 시합을 한 곳이 바로 황세바위라고 합니다. 


누군가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한일입니다. 황세와 여의는 결혼을 약속하였지만 신라와의 전쟁에서 공을 세운 황세가 왕의 명을 받아 유민공주와 결혼하자 여의낭자는 황세장군을 원망하여 죽었으며 황세장군도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김해 봉황동유적이 있는 봉황대공원은 수로왕이 세운 나라는 바로 전기 가야연맹의 맹주로 자리했던 금관가야를 잘 알 수 있는 곳입니다. 




철기문화가 꽃피웠던 금관가야는   532년(법흥왕 19)에 왕 김구해(金仇亥)가 왕비와 세 아들을 데리고 신라에 항복함으로써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구해왕의 아들이었던 무력은 백제와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워 벼슬이 각간까지 올랐는데  그 아들이 김서현(舒玄)입니다. 그리고 김서현의 아들인 김유신은 훗날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금관가야는 본래 구야(狗邪)·가락(駕洛: 伽落)·가야라고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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