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갑오농민전쟁이 있었던 천안 세성산성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4. 30. 06:30
728x90
반응형

교통의 요지 천안에는 다양한 산성도 있었는데요. 천안의 세성산에는 산 모양이 사자가 앞발을 딛고 응시하는 모습처럼 생겨 전쟁이 나면 세성산에 시체가 쌓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며, 동학 농민 운동 당시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에 대항하여 동학 농민군이 세성산에서 대치하였으나 패해 시체가 쌓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천안 세성산성(天安 細城山城)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록지(大麓誌)』 등에 기록이 전하고 있고, 1942년에 간행된 『조선 유적 조사 자료』에는 “성남면 화성리, 세성산의 남쪽 경사면 산꼭대기에 석루의 자취가 남아 있지만 훼손되어 옛 모습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아래에서 얼마나 올라왔을까요. 이곳 부근은 많이 와보았지만 세성산성은 처음 와봅니다. 




축조당시 삼한 시대의 농성(籠城)이라고 불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갑오 동학 혁명사』에 따르면 1894년 9월 농민군이 세성산에 집결하여 10월 18일부터 21일까지 죽산 부사 이두황(李斗璜)이 이끄는 관군과 접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였다고 하는데요. 그들을 기리며 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기념탑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목천 세성산 전투는 일본군의 지연 유도 작전에 동학군의 제1진이 참패한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학 농민군의 북상로가 차단을 당하였고 동학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전투당시를 상상하면서 세성산성의 주변을 걸어서 돌아봅니다. 



세성산에는 충청도 지역의 동학 조직인 북접(北接)의 동학 접주인 김복용(金福用) 등이 진을 치고 있어 그 기세가 대단했던 곳이었습니다. 



세성산성을 알리는 비가 세워져 있으며  당시 직산·천안·목천의 세 군현에 꽤 많은 백성이 동학에 가담하여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을 새롭게 알 수 있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