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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시의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16호 염선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9. 4.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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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선재와 혼인한 사계 김장생(金長生 : 율곡의 수제자, 조선예학의 종장)이 아들 김집과 서로 '지기(知己 : 나를 알아주는 사람)라 하고,  또  자신의  아홉 아들들(처지가 달랐던 전후 두 부인의 아들들)에게 같은 글자가 들어가는 공통의 이름과 별명(字)을 지어주는 등  돈독한 소통의 삶을 살았던 사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염선재 순천김씨(1572-1633)는 절재 김종서 대감의 7대손녀이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두번째 배위라고 합니다. 그녀는 선조(김종서)의 억울한 누명을 벗겨드리기 위해 당대의 명현인 사계 김장생의 계배가 되었습니다. 


부군 사계의 죽음으로 끝내 뜻을 이룰 수 없게 되자,  선조인 절재의 신원(伸寃)을 이루지 못한 한(恨)을 안고서 단식으로 자결하였다. 그 후 273년이 지난 1906년(광무 10년)에 그 절행이 국가의 인정을 받아 정부인(貞夫人)의 칙지를 받은 효열(孝烈)의 인물이 이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염선재에 대한 이야기를 곰곰히 곱씹어 살피면, 잔잔한 감동이 일 수 있고 ,  은은한 귀감이 될 수도 있고, 또 옛 사람이 말한  '사필귀정(事必歸正 : 일은 반드시 올바른 데로 돌아간다)'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염선재가 자신의 소생인 여섯 아들을 잘 훈육하여 당대의 명현(송시열 송준길 이유태 등)과 같이 학문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염선재는 원래 작은 제각이었으나 1913년에 현재의 건물로 증축되어 조선말 전통 가옥 형태를 잘 보존하여 1990년 9월 27일 지방문화재 자료 제 31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종 19년(1882)에 지은 이 건물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1987년에는 부패되어 손상된 기둥 밑부분을 절단하고 화강석으로 보강하였다고 합니다. 



염선재에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순천김씨의 생애에는 조선시대의 비정한 정치사가 담겨 있고, 조작된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가야 했던 몰락한 가문의 한 여인이 한(恨)과 설원(雪寃)의 염원이 담겨 있으며, 양반가 여성의 생활사적 일면이 생생하게 담겨서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또한 조선여성의 출중한  효열(孝烈)의 정신이 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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