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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탄압의 시작점에 있는 금산 진산성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11.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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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라고 하면 천주교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곳입니다. 천주교라는 종교는 수난이라는 고통을 딛고 일어난 예수 그리스도께 걸어가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요. 성지에서 만들어져 있는 수난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예루살렘의 여정은 수난의 연속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산성지 성당은 충남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207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땅에 천주교가 들어올 때는 천주교가 가지고 있던 교리는 용서될 수 없었습니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기존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세력이 있고 바꾸고 싶은 세력들이 있는데 그 충돌이 일어나면서 박해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주교에는 총 일곱 개의 성사가 있는데요. 태어나거나 새로이 받는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가 바로 그것으로 사람의 생활패턴의 중요한 모든 단계와 시기에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당진등에 자리한 성지들은 상당히 규모도 크고 다양한 시설도 갖추고 있지만 금산에 있는 진산성지는 소박한 모습입니다. 


예전에 지나가면서 볼 때는 진산역사문화관은 없었는데 지금은 새로이 조성이 되었습니다. 천주교의 역사와 더불어 진산지역에 대한 문화를 담고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천주교 처음 이땅에 들어올 때 정조는 천주교 박해를 하지 않고 공존을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1801년 정조 사후에 순조가 즉위하고 나서 박해는 본격화됩니다. 주요 박해는 1801년, 1839년, 1846년, 1866년에 일어나게 되죠. 


천주교라고 하면 어머니의 품이 연상이 됩니다. 마리아때문에 그런 것이겠죠. 금산에 위치한 진산성지는 최초 천주교 탄압지로 알려져 있는데 바로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면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정조와 체제공은 이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노론이었던 형조판서 김상집과 참판 이시수를 불러 물었고 그 다음날 정조는 '위정학(정학을 보위하라)'을 언급하면서 윤지충과 권상연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난 마지막 박해는 1866년에 시작되어 1873년까지 이어진 병인박해입니다. 가장 많은 순교자가 생겨난 이 박해는 흥선대원군이 주도했는데 이때 8,000~10,000명이 순교했다고 합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결국 정조 15년 (1791) 11월 13일 전주 풍남분 밖 형장에서 참수를 당하고 진산군은 5년 동안 진산현으로 강등되게 됩니다. 지금은 금산군에 속해 있는 지역으로 그 역사가 박해의 시기까지 올라갑니다. 






정조실록에는 아래처럼 쓰여져 있다고 합니다. 


"전라감사의 조사에 따르면 윤지충과 권상연이 신주를 태워버린 사실을 자백했다 하니 어찌 이처럼 흉악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 있겠는가. 대저 경학으로 모범이 되는 선비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차 물들어 이처럼 오도되기에 이른 것이니, 세도를 위해 근심과 한탄을 금할 수 없다."


진산의 역사는 천주교 최초 박해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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