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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구의 스토리가 흐르는 정려의 길 '송애당'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3. 3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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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그냥 여행이 아니라 문화가 있는 여행이 주목을 받는 것 같은데요. 대덕구의 법동은 조용한 동네이지만 스토리가 흐르는 정려의 길을 통해 많은 것이 바뀌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 대전 대덕구 ㄱ4ㅖ족로 589번길 39에 있는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된 송애장은 조선 인조 때 김경여가 지은 별당건물로 고종 26년에 다시 지은 곳으로 그의 호를 따서 송애당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곳입니다. 



법동에는 친구들이 많이 살아서 많이 오기도 했는데 이렇게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네요. 우선 송애당부터 찾아가 봐야 될 듯 합니다. 


송애당의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않은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잘 표현하는 공간입니다. 




대덕구의 역사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송애당의 정면은 3칸, 옆면은 2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의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구조는 왼쪽 2칸은 대청마루이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한겨울에 고고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와 비슷한 느낌의 건물입니다. 



후손들이 지금도 있을텐데요. 지금 저 건물도 후손들이 살아도 좋으만큼 보존이 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송애당 바로 옆에는 텃밭이 조성되어 있는데 비용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에게 그냥 제공되는 공간인 듯 합니다. 대신에  관리나 쓰레기 처리는 잘 되어야 한다고 하네요. 




법동은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1789년 정조 13년에 편찬된 '호구총수' 에 의하면 지금의 법동은 회덕현 현내면 법천리(法泉里)로 기록되어 있었음을 볼 때 조선중기에 이미 법천리(법동의 옛 이름)라는 행정구역과 지명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을 건립하는데 공을 세운 분의 건립비입니다. 이건 언제 세워졌을까요. 예전에 법동을 제 집처럼 드나들 때는 본 적이 없었는데 대덕구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새로운 것들이 눈에 뜨입니다. 




중리동과 같이 새로운 주택가로 개발되어 지금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된 법동이 이제는 스토리가 흐르는 정려의 길로 변모를 하고 사람들을 끌어들이네요. 




법동석장승은 또 처음 들어보네요. 대전 대덕구 법동 77-8, 95-2에 있는 법동석장승은 자연석에 눈코입등이 다듬어져 표현된 돌장승으로 남장승의 몸체에는 천하대장군, 여장승의 몸체에는 지하여장군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져 있던 것을 약 300여년 전에 다시 돌로 세운것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장승과 비교해볼 수 있는 고려시대의 장승이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이 법동석장승을 찾아가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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