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소설가나 시인이 한 명씩은 있는데요. 음성군에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작가의 꿈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글을 쓰게 된 이무영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음성군을 대표하는 농촌 문학 작가 이무영을 만나기 위해서는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2층으로 가야 합니다.
농촌문학작가인 이무영을 만나고 나서 생각나는 작가는 당진의 대표적인 농촌작가인 심훈이 생각이 납니다. 그 역시 농촌을 계몽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사람입니다.
이무영은 따로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니고 민속유물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습니다.
음성군에서는 매년 무영제를 열어 이무영을 기리는 문학제를 하고 있습니다. 본명이 용구(龍九)인 이무영은 1908년 충청북도 음성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는데요.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연탄 쌓는 일 같은 막노동을 하면서도 작가가 되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가토 다케오(加藤武雄)에게 몇 차례에 걸쳐 편지를 보내 그의 밑에서 4년 동안 문학 수업을 받게 됩니다. 이후1926년 ‘무영’이라는 아호로 장편 「의지(依支) 없는 영혼」과 「폐허」를 발표한 그는 1927년에 장편 『폐허의 울음』을 간행합니다.
이무영이 쓴 작품중에 많은 공감대를 끌어낸 작품은 바로 『신동아』에 「흙을 그리는 사람들」을 발표하는데, 작가는 이 소설에서 제목대로 농사짓는 이의 흙에 대한 애착을 그렸는데요. 서울에서 신혼 살림을 차린 아들을 찾아온 노인이 흙 냄새가 그리워 삽과 괭이를 사다가 화단에 꽃 대신 배추를 심습니다. 노인은 이웃의 밭까지 가꾸지만 시골의 흙 냄새를 잊지 못하고 이내 고향 마을로 내려간다는 내용입니다.
동아일보에서 직장을 잃은 다음 여러 사업이 번번이 실패한 뒤에 1940년에는 ‘제1과 제1장의 속편’이라는 부제를 단 「흙의 노예」를 발표해 농촌 문학 작가로 자리를 굳히게 됩니다.
직접 와서 보니 이무영이 적지 않은 작품을 내놓았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음성군을 대표하는 농촌작가와 민속유물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적지 않은 이야기가 압축되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네요.
시대별로 이무영이 출간했던 작품들의 원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1945년 해방 뒤에도 그는 1·4후퇴 때까지 줄곧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지으면서 1946년 「삼년(三年)」, 1950년 장편 「살의 화첩(畵帖)」 등을 내놓기도 하고 1952년에는 희곡 「이순신」을 써서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국어편으로도 출간을 하기도 했던 이무영은 1959년 『동아일보』에 발표한 「계절의 풍속도」를 마지막으로 갑작스런 뇌일혈로 1960년 서울 신당동 집에서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음성군의 민속자료보다는 음성군을 대표하는 농촌작가 이무영이 더 기억에 남는 날이네요. 이무영이 이 시기부터는 농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주로 썼기 때문에 한국 농민 문학 또는 농촌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시기는 1933년 경기도 군포로 귀농하였을때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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