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전라)

새만금 여행에서 가봐야할 사찰 금산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7. 1. 25. 08:00
728x90
반응형

금산사라는 사찰은 새만금을 찾지 않았다면 언제 만나봤을지 모르는 사찰이다. 김제에 이렇게 유서 깊은 사찰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김제 여행도 새만금과 연결되어 있기에 2016년부터 조금씩 가기 시작한곳이다. 사찰을 가면 그 순간만큼은 속세를 떠난듯한 느낌이 든다. 



최근 눈이 많이 내려서 그런지 금산사도 하얀색의 설경으로 볼만하다. 백제법왕 원년 서기 599년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면서 창건된 금산사에는 국보 제62호와 보물이 10점이나 있는 곳이다. 


대부분의 사찰에 있는 일주문으로 모악산금산사를 알려주고 있다.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과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 있는 모악산은 높이 794m로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모악이라고 했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규모가 있는 사찰답게 이곳에서도 템플스테이가 이루어지고있다. 

금산사가 지닌 보물들의 가치와 이야기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한 가족이 모두 이곳을 찾은 모양이다. 어른 운동화가 아이것으로 보이는 운동화가 놓여져 있다. 안에는 모처럼 주말을 맞아서 여행온 느낌을 공유하려는 듯 담소가 이어지고 있었다. 


자 속세의 어지러운 마음을 털어버리는 해탈교를 건너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이 있는 천왕문을 지나가본다. 


이곳은 잡귀가 지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은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다. 한 겨울의 매서운 바람도 잠시 포근해진다. 


금산사는 상당히 규모가 큰 사찰로 안에는 법당인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석련대(보물 23호), 육각다층석탑(보물 27호), 방등계단(보물 26호) 등이 있으며 국내 유일하게 현존하는 3층 목조건물 불전인 미륵전까지 있다. 






석물로 된 당간지주도 있는데 당간지주는 대부분의 규모가 있는 사찰에 자리하고 있다. 


사찰에 가면 오래된 고목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냥 정령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걸어서 들어가 본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유명 사찰은 임진왜란때 사찰이 소실되었는데 금산사도 40여채의 법당과 산내 남자가 소실되기도 했다. 


금산사 직영 불교용품점이 있는데 종교가 있는 분들은 이곳에서 금산사와 관련된 용품을 구매할 수 있다. 




조선 선조 때 무려 1,000여명의 동인이 몰살당한 기축옥사의 발단은 바로 정여립 모반 사건으로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해 세력을 키웠다고 서인들이 죄를 뒤짚어 씌웠다. 정려립은 조선 중기 사상가로 금산사에서 1,000일 기도를 하며 용마를 얻었다. 처가가 김제였기에 이곳에서 기도를 했던 모양이다. 




미륵을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후고구려를 세웠지만 그 끝은 좋지 않았던 궁예 역시 살아 있는 미륵을 자처하면서 세를 모았다. 금산사가 자리한 모악산 입구의 금평저수지는 ‘오리알터’로도 불린다. 오리알터는 ‘올(來) 터’가 변해서 된 말이다. 미륵부처를 의미하기도 한다. 높이 11.8m에 달하는 거대한 미륵보살을 모신 미륵전도 귀중한 불교 문화 유산으로 대접받고 있다. 


소탈하게 웃는 것 같은 산신이 필자를 반갑게 맞아준다. 



괜히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가 아닌 모양이다. 이상세계를 꿈꾼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미륵불이 도래하는 미래 세상은 고통 없는 낙원으로 미륵불에는 현실의 질곡에서 신음하는 이들이 닿고자 하는 이상세계의 꿈이 담겨져 있다. 





금산사에서 가장 규모가 크기도 하고 목조건물 불전이 있는 미륵전은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라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으로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곳이자 미래에 함께 성불할 것을 다짐하는 공간이기도하다. 후백제 935년 견훤은 후처의 아들 넷째 금강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하지만 큰아들인 신검과 형제들의 모반으로 이곳 지하에 3개월 동안 갇혀 있기도 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