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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대 몰락했다가 복권된 김제남의 흔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7. 1.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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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금부도사, 공조좌랑, 연천현감, 이조좌랑, 연흥부원군까지 올라갔던 김제남은 당대 권력자중 한 명이다. 자신의 딸이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까지 올라가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렸지만 이어 왕에 오른 광해군 때 이이첨의 공격으로 인해 처형되었다. 



김제남신도비는 강원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산67-3에 위치하고 있다. 한때 부원군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처형되고 1616년에 폐모론이 일어나면서 그 죄가 재론되어 부관참시되기까지 했다. 


김제남 신도비 바로 옆에는 수령이 500년이 훌쩍 넘은 보호수가 자리하고 있는데 김제남 신도비와 궁합이 잘 맞는 느낌이다. 


본관은 연안이며 자는 공언, 증조부와 아버지까지 영의정에 올라가기까지 했던 김제남은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만 내려지는 신도비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김제남의 딸인 인목왕후는  1606년에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낳았다. 당시 소북정권의 유영경(柳永慶)은 적통론에 입각해 적자인 영창대군을 왕위에 추대하려 했으나, 선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소북정권이 세력을 잃고 대북정권이 들어섰다. 


김제남에 대한 간단한 이야기를 접해볼 수 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인목왕후는 인조반정 이후에 대왕대비의 지위에 올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김제남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구조로 만들어졌다. 받침돌의 거북머리가 비를 바라보는 형태로 조각되어 있으며 머릿돌에는 용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김제남 신도비 바로 앞에는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이곳에는 여름에 오면 연꽃을 만나볼 수 있을 듯 하다. 





한 시절을  풍미했지만 세월의 풍파속에 그 끝은 그다지 좋지 않았던 김제남은 신도비로 후대 사람들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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