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준근 열사 묘역이라고 인터넷등에서 검색하면 지도도 제대로 안나오더라구요.
청산리 전투의 주역 김좌진 장군 묘역을 가는길에 보면 독립운동가 류준근 열사 묘역으로 가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 못가봤는데 마침 기회가 되어서 가볼 수 있었습니다.
청소면에서는 탁구대회도 따로 열리네요.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다가 보면 적지 않은 행사가 열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옆에 독립운동가 류준근 열사 묘역으로 가는길이 2.5km라는 이정표가 나옵니다. 좌회전 해서 가보기로 합니다.
열사 묘역으로 가는길은 이정표가 잘되어 있는편입니다. 찾아가기까지는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얼마 안남았네요.
보령 출신의 인물들이 생각보다 많은데요. 토정 이지함 선생이나 김좌진 장군등 역사의 변곡점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던 분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령 출신 독립운동가 류준근 열사는 어떤 사람일까요.
알다시피 1905년에 대한제국은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고 나서 국권을 잃어버리는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때 류준근 열사는 납세를 거부하고 일본의 침략행위에 항거하여 투옥되기도 했습니다.
을사조약이 체결되고난 이듬해에 전 참판이었던 민종식이 홍산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그의 휘하로 들어가 홍주성을 함락한 후에 참모로 활동하게 됩니다.
우록 류준근 열사 묘에 대한 설명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파리강화회의에 파리장서에 서명한 137인 중 한 명이었던 류준근 열사는 1919년 삼일운동에도 참가한 후 이듬해 보령으로 내려와 사망합니다. 류준근 열사 묘역이 자리한 곳은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신송리입니다.
1960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한 류준근 열사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관리들에게 "전곡갑병(錢 甲兵)이 모두 저 오랑캐의 것이 되었는데 너희들은 세금을 누구에게 바치려는 것이냐" 했던 사람이 류준근 열사였습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1906년 5월 전 판서인 민종식(閔宗植)이 의진을 이끌고 서천(舒川)읍을 거쳐 비인(庇仁)·판교(板橋)를 지나 남포(藍浦)에 이르자 직접 찾아갑니다.
겨울인데 날이 포근해서 좋네요.
겨울 같지 않은 날이 지속되는 보령의 겨울은 화사합니다. 의병활동을 하던 류준근은 지속되는 전투에서 패배하고 80여 명이 순국하고, 79명이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류준근을 비롯하여 남규진(南奎振)·이식(李 )·신현두(申鉉斗)·이상구(李相龜)·문석환(文奭煥)·신보균(申輔均)·최상집(崔相集)·안항식(安恒植) 등 9명은 일본의 대마도(對馬島)로 압송되어 억류생활을 합니다.
류준근은 이후에 홍주의진의 활약상과 대마도 유배지에서의 생활 그리고 면암 최익현의 최후에 관하여 문집을 지었는데 그 제목은 「마도일기(馬島日記)」이라고 합니다. 류준근은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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