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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에 있는 명장 이완장군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9.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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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에는 조선시대 명장으로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조카 이완장군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 내용변경은 없지만 관계자분이 이순신조카가 아니라네요. 누구인지 아시는 분의 첨언 부탁드립니다.,

 그 유명한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라는 유언을 받들어 노량해전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완장군의 묘는 이 안쪽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야 한다. 

이완의 자는 열보(悅甫)인데 이순신의 휘하에서 종군할 때 나이가 겨우 20세였다. 이완은 1599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광해군 때 평양중군과 충청도병마절도사를 지냈다. 인조반정 후 이괄(李适)의 반란군을 평정한 공으로 가선대부에 오르기까지 했다. 


이완장군묘가 있는 곳은 상거리 안텃말 부근이다. 


아직도 날이 더워서 걸어 들어가는데 땀이 절로 난다. 

이완장군은 후금이 정묘호란을 일으켜 1월 13일 후금군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성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했으나 이완은 이를 단호히 거절하기도 했다. 


이완장군 묘는 봉분을 중심으로 봉분 앞에는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 장명등(長明燈)이 중심선에 위치해 있다. 


우로 동자석(童子石)·망주석(望柱石)·문인석이 각 1쌍씩 차례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완장군의 신도비는 1688년에 건립되었는데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민정중(閔鼎重)이 글씨를 썼다고 알려져 있다. 


1627년에 이완은 성을 지키고자 했으나 후금군에 의해 전면 공격이 이루어지면서 성을 압박받는다. 이때 이완은 이들을 맞아 장대에 올라 지휘하다가 중과부적으로 패하자 병기고에 불을 지르고 사촌 동생 개(蓋)와 함께 뛰어들어 순절했다. 


충무공 가문은 대대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순절하거나 전사했다. 



순절한 이완장군은 추후 병조판서에 추증되었고 1706년에는 아산 현충사에 배향이 된다. 


이완장군은 허생전이라는 고전에도 잠깐 등장한 적이 있다. 



이완장군묘는 경기도 시도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되었으며 경기도 여주시 상거동 산19-18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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