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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구암 한백겸 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9.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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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여주시 강천면 부도리에 가면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한백겸의 신도비와 묘가 있습니다. 

한백겸(1552∼1615)의 본관은 청주(淸州)은 1579년(선조 12) 문과에 급제했으나 당시 당쟁이 격화되어 정국이 혼란을 거듭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경사(經史)를 비롯해 학문연구에만 전념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구암 한백겸은 학문연구에만 전념하다가 1585년(선조 18) 천거로 교정낭청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의 교정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비오는 날 이곳에 오니까 모기가 엄청 달라드네요. 



한백겸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이곳에 오면 분위기로 느낄 수 있습니다. 벼슬길에는 그렇게 오래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 때 사직하고 독서와 저술에 힘쓰다가 한성(漢城) 물이촌(物移村)에서 별세하였습니다. 



이곳까지 왔으니 구암 한백겸 묘를 보고 가려고 올라갑니다. 한백겸의 묘는 조부 한여필(韓汝弼)의 묘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백겸 묘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바로 신도비가 있는데요. 

1644년(인조 22)에 세웠습니다. 신도비는 귀부(龜趺) 대좌 위에 높이 275㎝, 폭 125㎝, 두께 40㎝의 비신(碑身)을 세우고 이수(螭首)를 얹혔으며, 전체 높이가 450㎝ 정도로 매우 큰 편입니다. 




운동을 안하다가 올라가니까 거친 숨이 쉬어지는데요. 묘역은 조성 후 변경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드디어 한백겸의 묘역이 나옵니다. 묘역은 약 250여평 정도로, 봉분을 비롯해 묘비(墓碑)·상석(床石), 그리고 문인석(文人石)과 망주석(望柱石) 1쌍이 있었습니다. 


묘역의 좌우를 둘러보면 오래된 흔적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더군요. 

『동국지리지(東國地理誌)』를 저술해 뒷날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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