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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발길과 흔적의 여행지 강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10. 2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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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지역은 강진이다. 조선을 개혁하는데 일조했던 정약용은 정조가 살아 있을 때는 경기도 암행어사가 되어 활약했고 수원화성을 설계하고 기중기와 유헝거를 고안했지만 정조사후에는 세상이 변하여 자신의 능력을 펼칠 기회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강진군이지만 정약용이 유배갔을 때는 강진현이었다. 다산 정약용이 한양에서 먼 이 강진으로 오게 된 것은 조선의 천주교가 위기에 처하자 황사영 등이 북경의 교주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한 비밀문서가 사전에 발각된 사건으로 유배된 것이다. 



산속의 집이라고 할 정도로 공기 좋고 쉴만한 여행지 강진은 정약용이 살아 있을 당시에는 정약용과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었다. 



조정은 정약용을 이곳 강진으로 보낸 이유중 가장 큰 것은 바로 강진현감 이안묵 때문이었다. 다산이 한양에서 취조당할 때 기록관을 맡아 다산에 대해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었을 뿐더러 다산을 압박하는데 재능 아닌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강진 사람들은 정약용을 가까이 하는 것을 꺼려했었다. 



가을에서 초겨울까지 강진은 나들이 하기에는 참 좋은 여행지이다. 이번 여름은 전기세논란까지 불러 일으킬 정도로 엄청나게 더웠기 때문에 갑자기 시원해진 날씨가 반갑기까지 하다. 



강진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사찰 백련사에 올라오면 다산기념과ㅏ 다산수련원, 다산초당, 해월루로 갈 수 있는 갈림길이 나온다.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 왔다가 주막집 노파와의 인연을 통해 자신이 추구해야할 학문의 길을 찾게 되었고 이는 다산의 저술서중 하나인 흠흠신서가 탄생하게 된 기점이 되기도 했다. 다산의 흔적이 이어진 곳에는 자연 속에서 이슬을 먹고 자라나는 녹차나무들이 있고 소나무의 그윽한 향기가 몸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울때 이곳에서 정약용의 남도유배길을 걷는 것은 힘든 일일수 있지만 시원해진 요즘 남도유배길을 걷는 것은 즐거움이다. 당시 노파가 다산이 머물 수 있게 내준집이 강진읍 동성리에 있는 사의재이다. 



강진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해월루로 걸어 올라가 본다. 다산은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하층 민중들이 어떻게 하면 이로울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농민들이 벼를 쉽게 재배하기 위해 수경 재배를 권했고 사람들에게 상추가 좋다고 알리기도 했다. 목민심서에는 "소화가 잘될 뿐 아니라 입을 속이고 장 기능에도 도움이 되니 좋은 것이다"라고 기록해 놓았다. 



해월루는 약 10여년 전에 준공되었는데 강진만이 내려다 보이는 오솔길에 다산의 목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해월루에 올라서서 보면 멀리 외지를 오가던 뱃길이 보이고 멀리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 항상 유연하게 세태에 맞게 하라"라는 말을 남긴 다산 정약용은 신분위 귀함과 천함을 구별하지 않고 민중들을 위한 삶을 살고 이곳 강진에서 자신의 생각을 실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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