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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여행에서 만난 독특한 사찰 동국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10.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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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새만금 방조제길을 드라이브하기 위해 많이 여행을 가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새만금 방조제의 입구의 도시인 군산을 방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군산에 가면 일본식으로 만들어진 사찰이 하나 있다. 동국사라고 부르는 사찰로 일본인 승려 우치다에 의해 지어졌는데 당시에는 금강사라고 불리다가 현재는 동국사로 바뀌어서 보존되고 있다. 근대기 불교 사찰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일본 목조 건축 양식으로 사용되는 몇 안 되는 사례로 꼽힌다. 





동국사는 현재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동국 사는 포교소로 출발하였다가 군산을 기반으로 큰돈을 번 구마모토와 미야자키 등에게 시주를 받아서 정식 사찰 건물을 지었다. 금강사는 해방 직후 미군에 몰수되었다가 약 10년 후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해동국(海東國)이라는 이름을 내포하는 동국 사라는 사찰명을 붙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군산은 수탈의 거점지로 활용이 되었는데 일본이 성공적인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는 데는 지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공이 컸다. 1860년대 일본의 활동가들은 지사를 '숭고한 뜻을 가진 사람'이라고 불렀는데 그들의 지적 교양은 인습적인 유교적인 가치들로 채워졌다. 그들이 생각하는 임무는 가족에 대한 배려나 책임보다도 우선시되었다. 




동국사는 구석구석에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어 독특한 문화 색이 가미된 곳이다. 




일부 언론이나 역사학자들이 동국사를 거론할 때 일제 침략의 증거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인다. 유럽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는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있는 듯하다. 유럽은 로마, 이슬람,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가들의 침략을 받았고 그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래서 유럽에는 지배했던 국가들의 색채를 보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역사를 지우려고 한다. 마치 없었던 일처럼 지우려고 하고 과거의 흔적을 모두 새롭게 세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지나간 역사는 절대 지워지지도 않고 잊히지도 않는다. 




동국사 대웅전 옆에는 비교적 새롭게 지어진 건물도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군산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고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을 지은 후 군산 지역을 관리했다. 일제 시대 당시의 시대관과 아픔이 담긴 생활상이 군산 출신 문학가 채만식의 소설 '탁류'에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을 여행 갔을 때의 조용하면서 차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이러니하게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게 하기 위해 조직 중 하나인 도사 근왕당이 서명한 서약서의 신념에 대한 문구는 아래와 같다. 


"위대하고 신성한 우리나라가 서양 오랑캐에게 능욕을 당하고,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야마토 다마시는 풍전등화의 기로에 놓였다. 천화 폐하는 이로 인해 깊은 시름에 잠겨 계시다. 이처럼 미증유의 위기가 닥쳤음에도 오랜 평화에 젖어 들어 우유부단하고 무기력해진 사람들은 그 누구도 야마토 다마시를 발휘하여 나라에 닥친 재난을 몰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하지 않고 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문구다. 일본 역시 열강 등의 침략에 일찍이 빠른 대응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의기투합했던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지붕 홑처마 형식으로 일본에도 막부 시대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가져온 형식이다. 얼마 전 돌아가신 분을 모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한국의 수많은 사찰을 가보았지만 저렇게 돌아가신 분을 대웅전에 모신 경우는 거의 본 기억이 없었던 것 같다. 



같이 갔던 일행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일본의 사찰이 이곳에 자리하게 된 역사적인 배경과 건물마다 어떤 특색이 있는지 등에 대해 해설하고 있었다. 군산에 많은 흔적을 남긴 일본이 성공적인 근대국가로 자리 잡게 한 메이지 유신 신정부를 위해 마련한 료마의 8개 조 강령은 아래와 같다. 


1. 일본 국내의 유능한 인재들을 초빙하여 산기로 임명할 것.

2. 유능한 제후들을 선발하여 조정의 요직을 맡기고, 무의미한 직책들은 폐지할 것.

3. 외국과의 관계는 심사숙고한 후에 실행할 것.

4. 법령과 법규를 제정할 것. 새로운 법전이 하자가 없다는 판단하에 승인되면, 제후들은 이를 준수함과 동시에 수하에게 이를 보완해 나가도록 할 것.

5. 상하 양원으로 구성된 의사권을 설치할 것.

6. 육군성과 해군성을 설치할 것.

7. 어친병을 설치할 것.

8. 황국의 금은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국제 관행과 일치되도록 할 것.




일본에서 건축 자재를 직접 가져와지었다는 대웅전은 한국의 전통 사찰처럼 거주공간과 분리된 형태가 아니라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일본은 자신들이 모시는 신과 생활공간이 함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한국처럼 누가 돌아가시면 먼 곳에 묘를 쓰는 것이 아니라 살고 있는 근처 공간에 모시고 자주 찾는다. 





동국사 대웅전에 들어오면 옛날의 장례식이나 동국사에서 이루어졌던 행사 사진들도 볼 수 있다. 


동국사에 자리한 하나하나의 물건마다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의 사찰과 달리 동국사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옛말에 '사람은 자신이 할 일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천명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하던가 자신이 할 일을 전부 다하지 않았음을 망각하고 누군가에게 빌고 희망찬 미래를 만들려고 애쓴다. 







세상은 변해가고 변해가는 데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한국의 대부분의 사찰들은 산속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사찰들은 도심 속에 자리한 경우가 많다. 산속에 있는 이유는 산의 기운을 받으려는 의도도 있다. 산의 기세는 음의 기운에 가깝다. 세상은 변하게 하는 것과 변해가는 것이 있는데 변하게 하는 것은 양이다. 자연이나 역사는 변해간다. 원인은 양이고 결과는 음이 받아들인다. 양에게는 도달점이 없고 오로지 출발점만 있다. 시간은 양으로 인해 끊임없이 전진하고 변화한다. 그 성질로 인해 공간은 변화하고 공간 속에 사는 사람들 역시 같이 변한다. 군산 근대역사의 여행길에서 만난 동국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작년에 군산 동국사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동국사에 세워진 소녀상은 건립 위가 약 5개월 동안 모금운동을 통해 1억 원을 조성하여 만든 것이다. 17세 전후의 여학생을 모델로 만들었다는 소녀상은 평화와 올바른 역사관을 이어갈 수 있도록 그 역할을 할 것이다. 


1909년에 창건된 동국사에는 일제 강점기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문서와 자료 등 5천 점 이상의 유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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