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강렬한 의미를 가진다. 병이나 노환, 사고로 죽지 않는 이상 죽음은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다. 너무 억울하다는 사람들이 끝에 선택하는 것이 분신자살인 것을 보면 무관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나면 누구나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세포가 끊임없이 자기복제를 하면세 대체하지만 그 과정은 언젠간가는 고장 나게 된다. 우리 몸의 전체를 싸고 있는 세포는 끊임없이 변해가면서 결국 노화의 과정을 맞게 된다. 즉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은 늙는다는 것이다.
소설가 역시 늙는다. 현기영의 산문을 담아놓은 책인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마치 자연스러운 자연의 흐름을 역행하는 말처럼 들린다. 육체는 늙어갈 수 있지만 정신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다르다. 나이를 먹은 만큼 이러해야 한다. 저러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면 정신은 늙어간다. 그러나 항상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이야기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늙지 않는다. 월남 이상재 선생이 그러했었다.
자신 인생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추측할 수는 있지만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기영은 책의 첫 장의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 "인생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뻔한데 뭐, 그렇게 힘들게 갈 것 있나."
제주도에서 태어난 소설가 현기영은 생명 한계선이 있는 산을 들어가며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생명을 거부하는 혹한의 고지대에는 순백의 눈, 눈보라, 눈사태만 있는 곳에서 죽음, 무한, 영원만이 남아 있다.
저자 역시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스팔트를 벗어나 생흙을 밟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흙은 우리 몸에 있는 구성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다.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동물과 나무뿐만이 아니라 인간도 포함이 된다.
책의 끝부분에는 제주도 산방산이 나온다. 며칠 전에 제주도를 갔다 와서인지 산방산이라는 이름이 무척 반갑게 들린다. 제주도의 중심에는 한라산이 있지만 남쪽으로 내려가면 우뚝 솟은 산이 하나 있는데 올레길 중간 부분에 자리한 산방산은 수직에 가깝게 가파른 기암절벽으로 병풍을 두른 산이다. 산행하는 산이 아니라 그냥 바라보는 산의 느낌이다.
"전설의 산방산은 원래 한라산 산봉우리였다고 한다. 아득한 옛날 한 사냥꾼이 한라산에 사냥하러 갔는데 하루 종일 찾아 헤매던 끝에 속세의 인간이 범접해서는 안 될 비경인 상상봉까지 오르게 되었다. 정상 근처에는 한여름인데도 흰 눈이 덮여 있었는데, 거기에 눈처럼 흰 백록 무리들이 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냥꾼은 그중 한 마리를 겨냥해서 활을 소았는데, 화살이 빗나가 엉뚱하게도 구름 위에서 낮잠 자고 있는 옥황상제의 엉덩이에 곶히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벌떡 일어나 한라산 상상봉을 발로 걷어 나치, 우직 끈 봅힌 산봉우리는 서남쪽으로 멀리 날아가 산방산이 되고, 봅힌 자리는 움푹 파여 백록담이 되었다는 것이다."
- p 216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는 산문이다. 의미상으로 보면 운율이나 음절의 수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인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그냥 일상 이야기부터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까지 쓴 것을 말한다. 쉽게 쉽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나이가 들어서 얻은 가장 큰 즐거움은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포기하게 되면 자유로운 삶을 얻을 수 있게 될 것 같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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