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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으로 유명한 웅천에서 만난 최상집의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4. 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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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이 돌로 오석이라는 돌로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돌이 많이 나는 곳인지는 몰랐습니다. 한국의 석재산업 중심지라고 불릴만큼 많은 돌이 생산되고 다듬어지고 있더군요. 웅천에 가면 모든 산업의 중심에 돌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돌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습니다. 




전국에서 유달리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충남인데요. 보령지역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지나가다 보니 최상집의사(1949 ~ 1909)의 유적지가 있어서 한번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조선은 1905년 을사조약으로 결국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게 됩니다. 1년뒤인 1906년 민종식은 부여군 내산면 지티에서 의병을 일으킵니다. 이때 보령시 웅천읍 소황리 출신인 최상집 의사의 나이가 58세였음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모집하는 소모장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그러나 무기등의 열세로 인해 홍주성이 무너지면서 최상집 의사를 비롯한 유준근, 이식, 신보균, 문석환, 남규진 등과 함께 대마도 유배형을 받고 끌려갔지만 협박과 회유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가르켜 홍주의병 대마도 9의사라고 불렀습니다. 



최상집의사는 3년만인 1908년 10월에 석방되어 한국땅을 밟았으나 의병운동의 휴유증으로 병이 들어 이듬해인 1909년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상집의사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었지만 추모비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최상집 의사를 기리며 2006년 이곳에 추모비를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58세라고 하면 상당히 많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나라 잃은 슬픔에 일어나 한몸을 기꺼이 바친 최상집 의사의 넋을 기려봅니다. 



기차는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지만 옛날 풍경이 괜찮은 곳입니다. 이곳은 예전에는 보령군 웅천면이었는데요.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되면서 읍으로 승격된 곳입니다. 이곳은 차량산맥의 지맥이 이어진 곳이서 잔구성 산지가 솟아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웅천읍에는 대창리, 성동리, 평리, 두룡리, 구룡리, 관당리, 독산리, 소황리등 13의 동리가 속해져 있습니다. 


저 밑의 하천은 웅천천이라고 부르는데요. 저곳은 물이 맑아서 은어가 서식하기도 한답니다. 


이 너른땅에서 1,000년이 지나도 변치 않아 왕릉과 대통령 비석으로 사용되던 남포오석이 나온다고 합니다. 돌이 많이 나는 곳이라서 그런지 어디를 가도 돌이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지 보령에 올때면 곳곳에 돌이 쌓여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는데 이유가 있었네요.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 뛰어난 웅천 석재입니다. 

조금 돌아다니다가 보니까 웅천 돌문화공원이라는 곳도 있는데요. 다음에는 이곳을 들러봐야 되겠습니다. 웅천 돌문화공원은 2012년에 착공하여 2014년에 개관한 곳이라고 하는데요. 보령에서만 생산되는 남포오석이나 다양한 돌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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