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체험단 및 삶이야기/역사다시 읽기

충남에 조선 임금 헌종의 태실이 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9.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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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조선왕의 태실은 전국의 좋은 자리에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태실이 일제 강점기에 관리하기 편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1928년 경기도 고양으로 옮겨져서 서삼릉 태실에 강제적으로 옮겨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중 몇 기는 전국에 산재해 있다고 한다. 그중 헌종은 조선의 24대 임금인데 그의 태실이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명월봉에 있는 것이다.

 

조선왕실의 경우 아기가 태어나면 태를 즉시 백자 항아리에 담아 산실안에 안치하여 두었다가 전국의 명산에 태를 묻었다고 한다. 왕실이 국운과 연결된다고 생각했으니 당연한  절차였을 것이다. 일본은 이왕직(조선의 왕실을 관리하던 직제)이라는 기관까지 만들어서 태실을 관리했던 것이다.

 

 

 

차가 자주다니지 않은 국도에 위치해 있어서 주의깊게 쳐다보지 않는다면 보지 못하고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대왕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져 있으니 조금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대왕이라는 칭호는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에게만 붙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헌종대왕이라는 말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안쪽으로 들어가 자그마한 언덕을 조금 걸어올라가니 헌종의 태실이 묻혀져 있다는 공간을 볼 수 있었다.

헌종은 1834년 순조가 승하하고 나서 즉위한 임금으로 헌종의 즉위로 인해 풍양조씨가 권력을 잡게 된다. 헌종 재위 15년동안에는 수많은 수해도 발생하고 이원덕, 민진용등의 모반사건이 일어나는등 하루가 멀다하고 불안한 정국이 이어졌다. 순조의 천주교 탄압정책을 이어받아 기해박해가 일어낫고 김대건 신부가 처형되기도 하였다.

 

 

 

예산의 외진곳에서 조선의 흔적을 만나게 될지 몰랐다. 돌거북의 무늬와 모양이 조선시대의 미술양식을 살짝 엿보게 해주었다. 헌종은 2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무척 미남이었다고 한다. 미남이기에 그랬는지 몰라도 여색을 즐겼다고 한다. 너무 많은 여성과의 관계때에 건강이 급속하게 악회되어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헌종의 치세기간에는 국가재정의 기본이 되는 전정.군정.환곡의 삼정 문란이 심화되고 백성들은 더 살기 힘들어졌던 것은 사실이나 적지 않은 문화적 업적도 있었다고 한다.

 

좋은 날을 택하여 풍수적 의미를 배려한 길지를 찾아 봉안했다는 태실을 처음 만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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