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 부르면 부를수록 깊고 맑은 물이 연상되는 이름이다. 성을 떼고 청이라고 부르면 더 좋은 이름은 지금까지 효녀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왔다. 지금까지 앞 보이지 않은 심봉사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야기는 너무 고루했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책 이야기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슴 따뜻한 이야기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그저 그런 이야기라고 치부 되던 심청이야기가 살아있는 이야기로 새롭게 각색되었다.
지구의 나이까지 언급하지 않아도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한 인간의 인생은 덧없을 정도로 짧았다. 사람의 인생은 꽃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의 삶이 짧기에 한순간에 아름답게 피고 빠르게 사그라진다. 연인 심청에서 심청은 사람의 헌신적인 부분을 너무 아름답게 표현하는 역할로 심봉사는 사람이 가진 추악한 면을 가진 역할로 등장한다. 한 사람은 표현하지만 한 사람은 그려내고 있다. 인생의 무게추 균형을 맞추듯 연인 심청에서 심청과 심봉사의 이야기는 교차해간다.
몰락한 양반가문에 눈이 보이지 않은 심봉사의 딸로 태어난 심청은 말 그대로 하늘이 내린 벌을 온몸으로 받아낸다. 한 번쯤은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에 저항 할만도 한데 묵묵히 인생의 고난 함을 견뎌내며 살아가지만 그다지 명석하지도 않은데다 눈도 보이지 않은 심봉사는 야망에 심안이 가려 입신양명의 헛된 꿈을 꾸며 살아간다.
책을 읽다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먹먹해진다. 청이의 헌신 같은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질 때 가슴이 미어지고 심봉사가 계집질과 도박에 청이가 목숨과 맞바꾼 공양미를 탕진할 때 가슴이 먹먹해진다. 인생사가 저런 것인가? 누군가는 희생하고 누군가는 그 희생을 담보로 인생을 분탕질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별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청이의 목숨과 맞바꾼 공양미는 심봉사의 탐욕에 의해 사라져갔다. 차라리 심봉사가 여생을 편하게 보냈으면 좋았으련만 그 많은 재물이 봄 날씨에 눈 녹듯이 빠르게 없어져갔다.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는 보이지 않은 희망을 품고 살았지만 심봉사의 인생은 더욱더 남루해지고 몸은 더 피폐해져갔다. 공양미만 없었다면 자신을 보살펴주는 귀덕어미에게 의지해가며 삶은 그렇게 근근이 살아갔을 것이다. 공양미가 생겼기에 파리들이 날라들었다. 눈이 보이지 않은 심봉사의 손에 쥐어진 큰 재물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에서 더 깊은 심연의 낭떠러지로 몰아넣었을 뿐이다.
직감은 아니라고 했지만 심봉사는 청이를 재물과 바꿨다는 죄의식이 밑바닥에 자리한 탓인지 애랑 이와 뺑덕어미의 속보이는 사기질에 속절없이 당한다. 눈이 보이지 않은 심봉사가 어찌 미모를 알 것이며 눈으로 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딸인 청이를 대신해 자신을 보살펴줄 여자 한 명이면 족했지만 하늘은 심봉사를 제대로 벌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하늘 옥황상제의 진노가 그렇게 컸나 보다. 자신의 탕약을 가져다준 유리 선녀보다 그걸 받아 마신 선관의 뻔뻔함이 더 싫었던 것이 분명하다. 15년을 살고 짧은 인생을 떠난 청이보다 봉사로 온갖 멸시를 받고 사기를 당하고 모든 이의 웃음이 되어가면서 한 많은 인생을 죽지도 못하고 살게 만들었다.
심청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군상이 모두 담겨져 있다. 최고 권력자인 고려국의 나라님, 400석의 투자로 큰 이문을 본 최도술, 심청만을 바라보는 남자 윤상, 자신의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심봉사, 천상에서도 지상에서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 청이의 이야기에는 우리의 인간상이 담겨져 있다.
이 세상에 내려올 때는 사람 꽃이 가장 아름답다고 했던가?
그토록 아름답던 사람 꽃이 필 때는 각기 다른 색깔과 모습을 가지게 된다. 채 피지도 못한 채 사그라져갔던 청이는 세상에 아무런 원한이 없다. 자신의 눈을 뜨고자 사지로 몰았던 심봉사와 인당수의 차가운 바다 속에 밀어 넣었던 세상의 잔인함을 사랑으로 품었다.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었던 청이는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현세에서 아버지와 딸로 태어났지만 청이는 기억도 나지 않은 천상에서의 사랑을 몸이 기억했기에 심봉사를 위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청이는 심봉사를 위해 사랑했기에 희생했고 그런 청이를 윤상은 사랑했다. 자신을 희생하여 누군가를 살리는 이타적 사랑은 심봉사에서 끝나지 않았다. 피지 않은 꽃에서 다시 태어난 청이는 고려국 나라님의 왕비가 되어 백성을 어루만져 주었다.
"다만 한 마리 청초한 나비처럼, 유리는 꽃 속에 가만히 웅크린 채 접은 날개를 펼 때를 자기도 모르게 기다릴 뿐이었다." - p246
처음에는 고전적인 효녀심청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익숙한 플롯에 편안한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살아서 숨 쉬는 청이의 이야기의 빠져들어 갔다. 내 앞에서 살아 숨 쉬는 청이에게 몰입되던 나는 어느새 그녀를 바라보는 윤상의 눈이 되어 쫓아가고 있었다. 그녀가 인당수에 빠질 때 무력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녀의 몸값을 심봉사가 도박과 기생에게 탕진할 때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했다.
그러나 물질에 대한 인간의 탐욕 그리고 욕망을 알기에 마냥 심봉사를 욕할 수가 없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쉽게 망가질 수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약함에 가슴이 시렸다. 옥황상제는 이타적 사랑을 할 수 있으며 혼란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유리선녀를 선택했고 유리선녀는 현세에서 청이가 되어 내려왔다.
연인 심청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처럼 개인적인 욕망을 이루는 평범한 스토리가 아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아버지가 새 삶을 얻기를 원했고 자신을 바라보는 윤상이 슬픔에 젖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던 소녀 청이의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소리 없는 울음을 느끼고 청이가 행복하기를 바랬다.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를 망가트려가며 인생 막장에서 아무런 희망을 가지지 못한 심봉사가 궁궐로 입궐하여 청이와 대면할 때 판도라의 상자의 끝에서 발견한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자신을 사랑했던 남자 윤상은 죽어가지만 아버지를 살리는 것을 선택했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가녀린 청이의 애절함에 가슴이 아팠다.
터널이 길고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빛은 더 밝은 법이다. 심봉사의 추함이 크면 클수록 청이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부각이 된다. 흔히 알고 있는 심청전의 미담은 고루했지만 재해석된 고전 연인 심청은 살아 숨 쉬었기에 즐거운 글 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가슴 시린 겨울날 청이가 있어서 따뜻했다.
연인 심청의 독서감상문 대회가 있습니다.
응모기간 : 2015년 1월 19일 (월) ~ 5월 31일 (일)
개인 부문과 단체로 나뉘어서 진행이 되며 발표는 2015년 6월 22일에 있습니다.
문의는 다산북스 문학팀 070-7606-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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