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충청)

보령시 대천면 폐사지 오층석탑 수난사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6. 17. 06:30
728x90
반응형

예전에 성주사지 오층석탑에 대해 간단히 포스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에는 숨겨진 일제시대 수난사가 있었다. 1910년대 중엽에 인천 부회의원으로 고노라는 일본인이 있었는데 석탑을 좋아했던 터라 충남 보령 대천면 폐사지에 있는 오층석탑을 불법반출하여 자기집 마당에 옮겨놓았다. 아직 일제 초기라서 나름 공평(?)한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총독부의 고적조사과가 보령군수에게 진상을 조사하도록 지시하였다.

 

오층석탑을 불법반출하는데 있어서 매수된 조선인의 역할이 컸었다. 역사적으로 조선사람들은 개인집에 탑을 세우는 일은 없었으며 그것을 자기 소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조선인이 매수되어 석탑을 팔았다고는 하나 석탑을 팔 수 있는 권리조차 없었으니 이는 매매계약이 성립조차 되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대천면 폐사지에 있었던 비운의 오층석탑은 부회의원인 고노의 손에서 빼앗아 오지 못했다. 해방과 동시에 오층석탑은 사라져버렸고 연대를 알 수 없는 삼층석탑만이 고노가 살았던 별장에서 발견되어 현재 인천 공보관으로 옮겨져 있다.

 

보령시 대천면에 있던 오층석탑을 반출할 때 현재 남아있는 보령 미산면에 있는 성주사지 오층석탑도 반출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이라는 성주사터의 오층석탑은 보물 제19호로 정해졌고 삼층석탑 둘은 보물 제20호와 제47호 지정되어 성주사지를 지키고 있다.

 

일본인들은 생활주택의 정원과 조경에 배치하는 석물로 불교 문화의 석탑과 석등을 진중히 여겼는데 이는 일부 매수된 조선인들의 이익과 맞물려서 수많은 한반도의 진귀한 문화재가 일본땅으로 반출되었다. 만약 일제시대에 보령시 대천면 폐사지에 있던 오층석탑이 반출되지 않았다면 성주사지 오층석탑과 더불어 보령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되었을 것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