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은 성황당을 많이 보아왔다. 성황이라는 뜻은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길손들의 지킴이라던가 길가에 위치했던 그런 형태가 아니였다. 성황이라는 말의 본 뜻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는데 성 둘레에 파놓은 연못인 해자에서 비롯되었는데 성지의 신을 수호신으로 믿은 것이 성황이다. 중국의 성황신앙은 고대에서 비롯되었는데 여러 국가를 거치다가 명나라에 와서 국가적으로 권장되었다. 우리나라땅에 성황신앙이 전래된 것은 고려로 알려져 있다.
성황당 혹은 서낭당으로도 불리는데 서낭당은 동구나 고갯길에 자리잡거나 서낭목, 장승, 솟대, 수살 같은 수호신들과 더불어 존재하기도 했다. 충남 아산에 있는 성황당 고개뿐이 아니라 서해안을 가보면 충남 서천군 도둔리 각시당도 서낭당 종류중 하나이다. 비록 유교적 지식인 석주 권필이 성황당에 대해 미신적 요소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지만 민간신앙이면서 지방에 중심이 되기도 했다.
성황당은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권력가나 지방권력이 체제 유지를 위해 보급한 관제적인 신앙임에 분명하다. 국가적으로 운영되던 성황당이 민간적 성황사로 바뀌게 된 시기는 17~18세기로 알려져 있다.
충남 아산에 위치한 성황당 고개 역시 고개에 위치해 있는데 보통 서낭당은 고갯목에 자리잡고 있다. 고개는 주변 시야가 확 펼쳐지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돌을 쌓았다가 불의 사태(전쟁)에 대비해 전투용으로도 사용했을 것이다. 고구려시대에는 국왕이 친히 돌싸움을 독려했고 종교적으로보면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에서 돌맹이로 골리앗을 물리쳤다.
돌싸움 연습이 유사시에 실제적인 돌싸움으로 효과가 있다. 아마도 성황당의 돌무더기는 마을을 지켜주는 무기였을 것이다. 그렇기에 항상 돌을 쌓는 경우가 많았다. 때로는 돌을 얹어놓으면서 자신의 바램을 기원해보기도 하는 것이다.
충남을 거쳐 전북 부안군 격포면 마포리로 가면 전형적인 옛 서낭당 고개가 있다. 서낭당, 성황당은 일반적으로 같은 의미로 씌이기도 한다. 민중들은 성황당이 아닌 서낭당으로 부른다. 성황은 송나라 성지의 신으로 수호신처럼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척석꾼이라는 존재가 있었는데 돌을 잘 던지는 돌팔매 장정을 뽑아 별도의 특수부대를 조직하기도 했고 이는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렇기에 고개에 위치한 서낭당은 마을을 지켜주는 그런 의미가 상당히 강했으리라 보여진다. 시간있으면 아산시 음봉면 쌍암리에 있는 성황당 고개를 이런 의미를 가지고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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