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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석탑의 진수 정림사지 오층석탑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1. 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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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주소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위치한 정림사지에 오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국보 제9호인 오층석탑은 익산의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백제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면 좁고 낮은 단층 기단이 특징이며 전체적인 구조미는 안정적이다. 




입장료는 비싸지 않으니 부담없이 둘러볼 수 있어서 좋은 곳이다. 

지금은 거의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정림사지에 주요 국보만 남아 있다. 정림사는 창건후 고려시대인 서기 1,028년에 중건되었으며 정림사는 명칭은 고려시대의 명문에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창건 당시에도 그 명칭인지는 명확하지는 않다고 한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목조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석탑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소정방이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겨 넣어 당시 상황을 말해주었다고 하는데 신성한 한반도안에 위치한 백제의 석탑에 외세인 당나라가 들어와 낙서를 한꼴이다.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했다'고 당당하게 기록한 비문을 보면서 힘에 굴복된 백제의 흔적 정림사의 존망을 짐작케 한다. 

 



백제의 탑을 만드는 기술은 인도와 중국에서 배워왔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기술은 일본으로 넘어가 수많은 일본의 사찰을 만드는 힘이 되었다. 융성했던 백제의 불교문화를 잠시 엿보게 해주는데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엿못을 지나 5층석탑 그리고 전각이 일직선상으로 이루도로 가람배치를 했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정림사에서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한 오층석탑

정림사는 사비왕궁에서 궁남지로 연결되는 주작대로의 우측에 배치하기 위해 서남쪽의 낮은 곳을 메우고 동북쪽을 깎아내어 평지를 조성한 후 남북자오선상에 연지, 남문, 중문, 금당, 강당을 배치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유사한 석탑이 서천에 위치하고 있는데 서천 성북리오층석탑으로 해안에 가까운 평지에 고려시대에 조성되었으며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모방하여 만들어졌다. 실제로 보면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훨씬 위용있고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백제인들의 건축기술은 삼국중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인들은 석탑을 만들지 않았고 신라인들은 벽돌모양으로 다음은 모전 석탑을 만들었는데 경주의 분황사 모전석탑과 비교해봐도 그 기술적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돌을 다루는데에는 으뜸이였던 백제인들의 흔적은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그 이후로 거의 완벽하게 지워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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