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1000)/영화평(드라마)

'러블리 본즈' 영화는 아름답고 인생은 의미있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0. 2. 2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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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블리 본즈라는 영화는 개봉전부터 많은이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피터잭슨감독은 반지의 제왕으로 이름을 크게 알린 거장이기에 쏠리는 관심은 어쩔수 없는듯 하다. 영화는 색채감에서 영화의 표현력까지 환상적이다. 어떤이들에게는 정적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사후세계에 대한 외국인의 시각과 다양한 순간의 심경의 변화에 대한 표현은 역시 피터잭슨이라는 환호를 하기에 충분하다.

 

 영화의 배경

 

러블리 본즈는 미국에서 2002년 베스트 셀러에 올랐었던 앨리스 세볼드의 동명소설이 그 원작이다.

 

책속에서 다양한 세계와 소녀의 심리적 변화를 어떻게 비쥬얼적으로 탄생을 시키느냐가 이 영화의 성공포인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영화가 매출을 많이 올릴만한 스토리의 영화는 아니다.

 

아주 대중적이지는 않지만 가족과 죽음이라는 의미를 다르게 조명한 피터잭슨의 의도가 잘 녹아든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있었던 러블리 본즈는 우리네 삶에서 행복이라는것을 다시 한번 조명하게 하고 우리가 언제부터 행복이라는것은 찾아왔고 행복의 조건이라는것만을 잣대로 들이대면서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지 깊게 생각하게 한다. 제목인 '러블리 본즈'란 예상치 못한 시련을 통해 점점 커지는 유대감을 뜻한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러블리 본즈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모두 수지를 통한 1인칭 혹은 3인칭 관점이다. 호기심 많고 사진찍기를 좋아하고 소녀의 순수한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캐릭터이다.

 

1973년 14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소녀 수지..꿈같은 미래와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희망을 잃어버린다.

 

누구나 어릴수록 순수하고 호기심 많고 꿈도 가지고 살아간다. 커가면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고 그 꿈은 학벌에 부모의 재력에 인생의 무게등에 모두 퇴색되어가는것이 우리네 인생이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가 있기에 잊어버렸던 태고의 기억을 되찾아가면서 사는 느낌이 든다.

 

최고의 신부 레이첼 와이즈 

 

영화에서 에비게일 새면 역을 맡은 레이첼 와이즈는 1971년생으로 올해 한국나이로 40세의 배우이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외모와 성숙함 그리고 연기력은 헐리우드 여배우의 탄탄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속에서 에비게일 새먼은 딸을 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는 캐릭터이다. 누구보다도 더 슬퍼하지만 돌이킬수 없는 일에 남은 가족까지 망가뜨리지 않고 싶어서일까?

 

한풀이의 대상을 찾지 않고 살아가는것이 정답일까? 아니면 일을 저지른 누군가에게는 죄값을 반드시 받아내야 할까? 결국 이번에 논란이 된 사형제 폐지 문제와 맞물려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바로 부성애이다.

 

똑같이 딸이 있는 입장에서 마크 윌버그가 연기한 잭 새먼의 입장은 매우 공감이 간다.

 

어른이지만 지상과 천상의 '경계(In-Between)의 딸과의 교감을 통해 점점 진실을 알아가지만 현실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여성보다 남성이 더 약하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것은 러블리 본즈에서 잘 드러내고 있다. 잭 새먼은 첫 딸을 잃은 슬픔과 분노에 다른 가족을 생각지 못하고 집착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그 반면에 에비게일은 남은 가족을 챙기고 남은 삶을 영위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로 이시점에서 소중한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생기게 되면서 부부의 갈등은 증폭되어 간다.  갈등이라는것은 이세상을 살아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에 대처하는 자세는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아무리 별볼일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더라도 인생에서는 한가지쯤 좋은 추억이 있을것이다.

 

러블리 본즈에서는 수지와 잭은 병속에 모형배넣기에 대한 추억을 함께한 추억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잭이 딸을 잃은 슬픔에 병을 깨버리는 순간 경계에 있는 수지도 추억이 깨져나가는것을 바라보게 된다.

 

영화는 추억과 복잡다단한 소녀의 심경의 변화를 상당히 잘표현했는데 아름다운 색채의 컨셉은 마치 팀버튼의 색채감을 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극과 극을 달리는 팀 버튼과 달리 피터 잭슨은 좀 조화롭다는것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인생의 등대가 하나쯤은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표현되는 등대는 아버지와의 추억에서 만들어진 등대이다.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는 등대는 태어나서 부터 성인이 되고 그리고 장년층이 되어도 어떤방식으로든지 등대는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남은 삶이 있고 앞으로 영위할 삶들은 있다. 육체는 20세정도에 모든 성장을 마치고 쇠퇴의 길로 들어서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다. 성공적으로 나이가 들어가는것은 이시대에 모든 이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다. 죽기전까지 계속해서 성장한다는 성인의 평생 발달과정을 조명하는 책들은 주변에 많이 나와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나온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도 그중에 하나이고 그외에도  행복청바지, 행복경영, 1%의 행복, 카네기행복론, 행복한 사람 등등..인생에 어느위치에 있더라도 아니 내가 어디에서 있더라도 나를 밝혀주는 하나의 등대가 있다고 하면 행복의 상대적인 조건은 만족한것이 아닌가?

 연쇄 살인범에게 자비란?

 

한국도 이제 연쇄 살인범이라는 범죄자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인간을 살해하면서도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쾌락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만을 위하고 가족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공간에서 살아온 사람은 인간이라는것의 존엄성을 쉽게 잊어버리고 산다.

 

러블리 본즈는 단순히 살인범을 잡아서 복수하는 아버지의 부성애 혹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보여준 작품이 아니어서 단순 권선징악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바로 옆집에서 살아가고 있고 같은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연쇄 살인범을 보면서 많은 관객들이 분노하고 태연한 표정과 처세에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 영화는 평화로운것 같지만 곳곳에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은 배려(?)를 하고 있다. 스릴러도 아닌것이 스릴러의 흉내를 내고 있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상당부분의 재미를 부여한 캐릭터는 스탠리 투치가 천연덕스럽게 연기한 연쇄 살인범 조지하비가 아닐까?

 

“살인에서 쾌감을 얻는 살인범과 그 범행으로 인해 커다란 고통으로 해체 된 한 가족, 그리고 그 가족이 다시 일어서서 가족애와 사랑으로 회복되는 이야기라는 러블리 본즈는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화이다.

 

단순한 권선징악도 아닌 가족의 해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세상에 들려 14년이라는 찰나의 순간을 살고 갔다는 수지의 말에서 인생의 무상함과 동시에 행복감, 안도감, 고마움, 안타까움의 복잡한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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