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트 감독이라고 하면 헐리우드를 이끄는 힘있는 사람중 하나로 뽑힌다.
안젤리나 졸리는 매우 강한 캐릭터로 영화속에 등장한 덕분에 이런 류의 영화가 어울릴까라? 라는 의구심을 한번에 날려보냈다. 역시 헐리우드에서 자리매김을 한 배우들은 그내공이 한국배우들과는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체인질링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1920년대에서 1930년대까지 아들을 잃어버린 어머니가 아들을 찾는 과정에서 벌어난 일들을 차분하면서도 짜임새있게 그려나갔다.
여타 유괴영화나 실종영화와는 달리 이영화는 그 시대의 공권력에 대항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과 20여년전만 하더라도 미국은 기회의 나라 공명정대한 나라, 따라가고 싶은 자화상같은 느낌을 전달했었다. 미국의 어두운 이면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아주 밝은면만 부각하고 완벽한 나라처럼 신문과 미디어는 포장해왔다. 그러나 2000년에 들어서면서 미디어가 상당히 확대되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정보가 전달되면서 더이상 포장이 불가능해지기 시작했다.
왜? 조중동이나 미디어는 미국을 포장해왔을까? 영어가 하나의 이유가 될수도 있고 자신의 이득에 부합되는 방향이기도 하다. 현재의 미국은 어떠할까? 현재의 불황을 예전 1차 대공황과 비교하곤 한다. 이때의 미국의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이후 대통령 투루먼으로 이어지면서 성공적으로 극복할뿐만 아니라 하층계급으로의 소득과 부의 재분배를 극적으로 성공시키며 미국을 이전보다 훨씬 평등한 사회로 만들었다.
이 정책은 1950~1980년때까지 경제적으로 슈퍼미국을 만들기에 이른다. 그러나 1980년대에 레이건을 기준으로 불평등 소득이 심화되기 시작했는데 2008년부터 시작되는 세계적인 불황의 원인인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과거 미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치안인 경찰내부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특히 1920년대의 미국LA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경찰이 쥐고 온갖 탈법과 불법자금의 중심이 된다. 이시대에 크리스틴 콜린스는 벽과 같은 공권력에 대항한다.
영화는 140분이라는 짦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잔잔함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들을 잃어버린 크리스틴 콜린스가 그 중심이다. 이때의 시대적 배경은 LA경찰이 썩을대로 썩어 있고 사회적으로 분위기는 성숙해가는중이었다. 분명히 충돌이 일어날수 밖에 없는 필연적인 시대적 상황에서 그 도화선이 된것이 크리스틴 콜린스다.
아버지 없이 아들을 혼자 키우는 크리스튼 콜린스는 어느날 휴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빠진 근무자를 대신해서 출근하게 되는데 이날 아들이 실종되게 된다. 1920년대의 LA경찰은 2000년대의 한국경찰과 똑같았던지 가출로 치부해버린다.얼마전 터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희생자중 하나인 평범한 주부도 가출로 치부해버리는 바람에 연이어 희생자가 더 발생했다.
LA경찰의 뒷장대응덕분에 아들을 찾기는 더 요원해지고 벌써 시간은 흘러 5개월이 지나가고 LA지역사회의 지도자였던 구스타브 브리그랩 목사 (존 말코비치분)의 여론 압박은 계속된다.
클린튼 이스트우트 감독과 제작자들이다. 이런 시사적인 작품도 헐리우드에서는 수작으로 만들어낸다는데에 시스템이 부러울 따름이다.
왜? 클린튼 이스트우트는 안젤리나 졸리를 택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안젤리나 졸리는 이번 작품을 끝으로 많은 작품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자식을 잘 키우고 싶은 어머니 역할에 충실하고 싶다니 물질 만능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떠한 돈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시간을 대신할 수 없다는것이 내 생각이다.
목사의 공세로 말미암아 LA경찰청은 궁지에 몰리고 결국 실종 5개월만에 멋진 쇼를 생각해낸다. 갈곳 없는 비슷한 나이의 꼬마를 하나 데려워서 아들 역할을 시키고 기자들에게 LA경찰의 공로를 알리는 쇼를 한다. 누가봐도 말이 안되는 샹황이지만 크리스틴 콜린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책임자 JJ존스 경감은 그대로 추진한다.
아주 재수없는 역할을 맡았던 JJ존스 경감은 예전에 윌스미스 주연의 Hitch에서 월가직원역을 맡았던 제프리 도너반이 맡았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회적인 정확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같은 자세로 일관하며 결국 평생 정직이라는 판결을 받게 된다.
크리스틴 콜린스를 정신적으로 힘을 주며 버팀목이 되었던 구스타브 목사이다.
결국 연쇄살인범의 꼬리가 잡히면서 경찰의 말도 안되는 초동대응이 허구임이 드러나게 되고 월터 콜린스가 연쇄살인범 고든 노스컷에게 잡혀갔다는것을 알게 된다.
당당하게 쇼를 하던 JJ존스 경감..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지만 말로가 비참하다.
1920년대의 LA경찰에도 2009년 강호순을 검거했던 경찰처럼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경찰이 있었던것 같다.
레스터 이바라 형사는 JJ존스 경감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실을 밝혀내는데 있는 힘을 다한다.
4인치 가까이 차이나는 아들, 학교 친구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들, 신체적인 특징도 크게 차이나는 아들, 치아의기록도 전혀 다른 아들..이런 아들을 자신의 아들이라고 우기는 LA경찰국과의 싸움은 소시민인 여자 혼자의 몸으로는 상당히 힘든 싸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이시대에도 반복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경찰의 공식적인 발표로도 진압을 위한 물대포는 소방관도 안되고 경찰만이 가능하다는 용산경찰서 책임자의 말이 태연하게 철거민에게 물대포를 쏘던 깡패 용역직원의 모습에서 철저히 무너지지만 검찰은 행정력 보조직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지껄인다.
미국의 장점은 뒤에 두고 가시적으로만 나타나는 추진력만을 가져오려는 이명박 정부..원칙따윈 없는 공권력, 판사임의대로 해석가능한 법조문과 권력의 앞잡이 같은 검찰에게서 어떤 정의를 찾아볼수 있을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법과 원칙을 어기려는 사람은 증가하게 된다. 판사나 검사, 경찰이 무엇이 대단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가라는 생각을 일반 시민들도 하게 될것이다.
자신만이 잘되면 된다는 극단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연쇄살인범 유영철이나 강호순의 뒤를 잇는 제2, 제3의 연쇄살인범이 나올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위대한 뉴딜정책으로 경제를 부활시키고 상위층과 하위층의 소득격차를 엄청나게 줄이면서 미국을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일으켜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한국에 없는것일까? 오늘날 오바마에게서 미국은 희망을 본다고 한다. 한국의 희망은 이명박 정부에게서 볼 수 있을까?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상위 1%감세안과 부동산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거품을 조장하는 정부라면 그 희망은 없다.
오래간만에 생각을 하면서 보게 한 영화이다. 이영화를 본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용산참사와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주마등처럼 지나갈것이다. 자신의 목숨과 자식의 안녕은 누구보다도 아꼈던 강호순의 모습은 영화에서 교수형을 받았지만 삶의 끈을 놓치 못했던 고든 노스컷에서 찾을 수 있다.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살고 있고 이사회가 긍정적인 민주주의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산다. 정치가 바뀌어야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잘되면 된다는 국민 하나하나의 생각부터 바뀌지 않으면 불평등의 사회는 더 심화되고 공권력은 호박을 수박이라고 우기는 일이 비일비재해질것이다. 또한 연쇄살인범도 끊임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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