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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애의 난을 진압했던 강순장군의 산수동 소나무

어린왕자같은 식객 2020. 10. 2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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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갈현리에 가면 보령 산수동(保寧 山水洞)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소나무는 2009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79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데 이 나무는 강순 장군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강순 장군(1390~1468)의 본관은 곡산이고, 자는 태초(太初)이며  1450년(문종 1)에 조전절제사로 박천으로 나가 북방 방어에 힘을 썼다고 합니다.  1453년(단종1)에 판의주목사를 역임하고, 1458년(세조4)에 첨지중추원사로 중앙으로 복귀를 하게 됩니다. 

 

강순 장군은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신천부원군에 오르며 왕으로 부터 땅을 하사받고 심은 소나무가 산수동 소나무다. 한 그루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멋스럽게 사방으로 퍼져 있는 것의 기상이 대단합니다. 6진 개척 당시 세종은 이 지역에서 여진족을 몰아내기 위해 백성들을 이주시키면서 각종 국역(國役)을 면제하는 등 다양한 혜택을 베풀었습니다.

 

세종이후에 당시에는 지역 토착 세력인 토호층이 이들을 예속민으로 지배하며 중앙 정부로부터 비교적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조는 중앙집권 정책을 강도 높게 시행하면서 함길도의 이 같은 특혜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시애가 난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살다 보면 거짓이지만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실처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문을 듣고 소문에 움직이고 소문을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언론이나 소문에 나오는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때 좋은 방법은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 않다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소나무가 이렇게 낮게 옆으로 퍼지면서 지붕을 만들듯이 자라는데 마을 사람들을 이 소나무를 방송이라고 부르며 나무 앞에서 정성껏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토벌군으로 참전한 무사들을 중심으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봉하게 됩니다. ‘적에게 성을 낸 공신’이라는 뜻입니다.

 

 

마치 나무처럼 사는 것은 쉽지가 않죠.  최근에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이나 코로나 19에 대응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무와 같은 사람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개공신은 모두 45명으로, 1등에는 귀성군 이준과 조석문, 어유소, 강순, 허종, 남이 등이 포함됐습니다. 강순은 남이는 병조참지 유자광(柳子光)으로부터 ‘스스로 국왕이 되려고 역모를 꾸몄다’라는 모함을 받게  될 때 모진 고문을 받은 남이는 옥사했는데 강순을 비롯해 변영수(卞永壽), 조경치(曺敬治), 문효량(文孝良) 등 남이 일파로 몰린 수십 명도 이때 함께 처형됐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는지 과일이 익기 시작하네요. 유자광과 같은 사람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어 왔습니다. 일명 간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으며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온갖 술수를 가리지 않습니다. 강순은 적개공신에서 삭훈되었지만 수 세기가 지난 1818년(순조 18) 우의정 남공철의 건의에 의하여 누명이 풀리고 관직이 복원되었습니다. 산수동소나무에서 그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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