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1000)/한국여행(대전)

조선시대에 대전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8.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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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전의 중심은 대전 둔산이나 유성등이지만 과거에는 현재 굴다리가 많이 있는 읍내동 주변이 중심이었습니다. 그곳은 대덕구 일대에 설치되었던 현으로 회덕현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대인회덕 소인회토라는 말은 가슴에 덕을 품고 소인은 가슴에 고향을 품는다고 합니다. 회덕초등학교는 과거에는 회덕현청의 부속 곡물창고였으며 북서쪽으로 올라가면 회덕향교 있죠. 



중학교때 이곳을 수없이 지나갔는데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 및 비각을 본 기억이 나지 않은 것을 보면 사람은 아는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래된 건물의 안쪽으로 걸어서 들어가 봅니다. 우측은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입니다. 작은 시장도 조성되었을 것 같네요. 



저 전각안에 잇는 대전시문화재자료 제27홀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각은 홍원모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홍원모는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1829년 순조 때 암행어사로 바로 이곳 회덕지방의 민정을 살피던 중에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던 백성을 구제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었다고 하네요. 


임금은 백성을 괴롭히지 않은 신하를 임명해야 하고 그 신하는 백성을 살피면 모두가 살기가 좋아지기 마련이죠. 






회덕유래비가 세워져 있는 곳에는 이곳이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알게끔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이곳 대덕구 읍내동은 당시 회덕현의 행정중심지로 동쪽으로는 계족산, 서쪽은 갑천, 남쪽은 법동과 대화동, 북쪽은 신대동과 연축동과 인접해있는 동으로 회덕현 관내의 지방행정을 수행하던 회덕관아터는 현재 회덕동주민자치센터 옆에 일부 터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회덕현감 조이숙을 기리는 글도 있습니다.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고 합니다. 


맑은 지조는 얼음을 닮은 듯하고,

은혜로은 정은 봄 흐르는 듯하도다.

방금 잃어버린 지극한 행실이여!

전사에 드문 일이었네.

옛적에 공이 와서 의지하면서

아이나 늛은이가 기쁘게 노래하더니,

지금은 널로 돌아가시니

울부짖어 붙든들 만류할 수 없구나.

슬픔은 어디에 의탁할까?

비석은 길가에 있네.


설명을 읽어보니 회덕현 관아를 비롯하여 동헌, 객사, 침벽당, 응향정, 창고, 무기고등 79칸에 이르는 규모의 관아였다면 명실공히 이곳이 중심이었다고 할만하죠. 




덕을 품었다는 회덕이라는 의미의 길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홍살문은 잡귀들을 못들어오게 막는다고 하죠. 



덕을 품은 회덕길을 걷다보니 오래되어 보이는석장승도 만나네요. 얼굴이 참 해학적으로 보입니다. 



올해는 참 많은 생각을 하는 새로운 흔적을 만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덕구에도 갈만한 곳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됩니다. 대덕구에서만 오랫동안 살았는데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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