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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의 집성촌 성산이씨의 이야기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8. 6. 21.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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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중에서 성안이씨도 있습니다. 조선 초기 이사징(李士澄)이란 선비가 정착하여 마을을 개척하면서 장차 벼슬을 많이 하는 마을이 되라는 뜻에서 관동방(館洞坊)을 세웠고, 이것이 관동면이 되었다. 달리 관동, 관골, 관곡이라고도 하였다고 합니다. 




고령군의 쌍림면에 가면 면사무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성산 이씨의 흔적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시대 효부 성안이씨의 비각으로 하거리 학골 마구실 입구에 있습니다. 학골은 넓은 들판을 끼고 앞족에 안림천이 흐르며 매년 학이 많이 날라드는 곳입니다. 


효부 성산이씨는 어느 날 화재가 일어나 집과 사당이 불에 탈 때 70세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사당에 들어가 시부모님과 남편의 신주를 모셔 나오다가 순절하였다고 합니다. 



효열각에서 아래쪽으로 좀더 내려오면 성안이씨 문중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 있습니다. 



고령에서 성산이씨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비와 제사를 지내는 곳을 유지할 정도면 많은 영향력이 있는 곳이겠죠. 


성산이씨의 많은 분들의 이름이 비에 적혀져 있습니다. 성산이씨의 관련 유적으로 미산정, 죽포서당, 성안이씨 육현비등이 있습니다. 


성산이씨는 고려시대에 개경의 귀족이 되어 여러 벼슬을 누려왔습니다. 성산이씨는 고려 말에 이르러 △인주공파 △김산공파 △정언공파 △봉익공파 △기국공파 등으로 분파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열려 있는 공간입니다. 제사가 있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인다고 하네요. 


오늘날의 성산이씨 후손들은 약 8만명 정도로 나타났고, 주로 경북 성주·고령·칠곡·의성군, 영천시와 대시 등에 많이 분포해 있다고 하네요. 


전통 고택을 짓는 방식으로 지어진 건물입니다. 



문중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긴 하지만 그냥 고택을 둘러보듯이 돌아볼 수 있는 곳이네요. 한적하니 여유있고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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