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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시대 무덤 부여 산직리 지석묘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6. 9.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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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바윗돌로 만든 무덤인 고인돌은 보통 청동시시대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고분이 자리한 부여 조촌면 산직리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된 부여산직리 지석묘가 있다. 1991년과 1992년 두차례에 걸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로 2개의 지석묘가 발굴되었으며 그 축조시기는 청동기시대로 밝혀졌다. 




지석묘가 있는 곳에 올라와보면 주변에는 대부분이 평지로 이곳만 살짝 올라와 있는 형태로 주변 지형이 한눈에 보인다. 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석성천이 흐르고 있어서 고인돌이 자리한 곳과 비슷한 형태를 띄고 있다. 



2기의 묘가 나란히 위치한 이곳에는 여러개의 돌이 남아 있는데 발굴조사 결과, 4개의 받침돌을 갖춘 기반식 지석묘로 대표적인 덮개돌은 길이가 590cm, 너비 370cm이를 정도로 큰 편이다. 



지석묘라고는 하나 하부를 발굴해본 결과 공간이 있는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고인돌이 놓인 곳의 하부에는 매장구조를 만들어서 시체를 안치할 수 있도록 해놓는데 그런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형식은 무덤형식을 따랐지만 제사를 드리는 제단의 기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직리지석묘라는 비석묘가 보인다. 아래에 토광이나 석관등이 있을 경우 그곳에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는데 청동기시대의 경우 돌로된 촉이나 칼등이 주로 나온다. 


원래는 돌을 받치는 구조로 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한쪽이 무어지고 돌 하나만이 기대서 윗돌을 받치고 있는 상태이다. 


지석묘는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는데 경제력이나 정치권력을 가졌던 지배층의 무덤으로 이렇게 받침돌을 놓고 위에 돌을 올려놓는 탁자식과 그냥 작은 돌을 올려놓고 위에 얹어놓는 느낌의 바둑식으로 나뉘어진다. 



고인돌에 사용되는 바위는 보통 질이 좋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옛날 석공들은 그 돌을 다른 건축자재로 사용한경우가 흔했다고 한다. 



바위를 자세히보면 바위를 손질하기 위해 석공들이 손을 덴 흔적들이 보인다. 




옛 선조들의 무덤이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여 초촌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매년 풍년 농사를 염원하는 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산직리 지석묘 일원에서 매년 풍년기원제를 올리고 있는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곳 근처에서는 별다른 자연재해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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