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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갈이 교수, 이 사회에 제대로된 지성이 있는가?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12.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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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대학을 졸업할때 대학원 제안을 받았지만 가지 않았다. 석사나 박사가 된다 한들 인맥을 조금더 쌓고 해당교수라인으로 들어간다는 것외에 별다른 메리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석사나 박사가 된다는 것은 학문적으로 어느정도 수준에 이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걸 가르치는 교수조차 내 기준에는 지성인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해보이는데 석사, 박사 출신이 된들 무어가 달라지겠는가라는 생각을 20대 중반 나이에 했었는데 그 판단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 맞았다는 것을 내 스스로가 증명한 셈이다. 정보통신, 물리학, 한국사, 문학, 철학등 모든 분야에 기득권은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석사나 박사가 되려면 미쳐야 한다. 그냥 조금 힘들다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석사 박사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쓰는 논문?..많은 사람들의 논문을 보았지만 그냥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것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통찰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할 교수들의 수준은 대부분 정체되어 있다. 가르친다고 하지만 가르침을 받는 학생들의 수준이 낮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표지갈이는 아주 오래된 케케묵은 문제였을 뿐이다.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고 나서 더이상 발전이 없는 교수들이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가. 무엇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손으로 베끼기를 시키고 아무 필요도 없는 노가다 작업을 시키는 교수들이 허다하다.

 

 

 

 

우선 위의 사진은 이번 표지갈이와 상관있는 대학이 아니라 상아의 탑이라는 대학을 상징하기 위해 인용하였을 뿐이다.

 

제대로된 책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쉽지 않다. 쉬웠으면 대학교수들이 표지갈이를 통해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썩을대로 썩어있던 대학의 문제점을 들어낸 것이다. 전공서적의 제목과 저자명을 바꾸어쓰거나 제목은 그대로 두고 저자명이나 표지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것이 벌써 40년에가깝다. 이번 문제로 문제가 있는 교수들은 모두 강단에서 퇴출시키고 새로운 피를 수혈받아야 한다.

 

지금까지 논문을 읽으면서 나의 한계를 가장 명확하게 느끼게 해준 것은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었다. 오만했던 나에게 벽을 보여준 것은 일명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도 아니고 SKY출신도 아니었다. 수없이 많이 봐왔지만 그들 역시 평범한 수준에서 조금 올라간 정도였을 뿐이었다. 내 안에 지식욕이라는 괴물은 아직도 모자라다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지식을 흡수하고 있다. 부족하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발전이 없는 사람이다. 난 아직도 채워져야 할 양이 얼마인지 솔직히 예측도 못하겠다. 죽음의 그 순간에도 난 아직도 모른다고 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 철학자의 말처럼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무지함을 깨달았다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이 씁쓸하기만 하다. 사는게 뭐 있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살기만 하면 좋겠다. 그냥 길가에서 유유자적하게 돌아다니는 개들처럼 말이다. 어떤 이는 덕을 쌓으면 인간이 된다는데 난 거꾸로가 아닐까는 생각이 든다.

 

진정한 천재가 가져야할 최고의 재능은 기억력, 계산능력같은 게 아니다. 통찰력이다. 어설픈 통찰력을 가지면 최소한 분야에 가리지 않고 업무나 지식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통찰력은 모든 것을 깨닫게해주는 마법의 묘약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 그건 맞다. 하수는 고수의 수준이 어딘지 알 수가 없다. 가본적이 없는 길을 기억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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