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맛집(1000)/지민食客(충청도)

아름다운 선이 돋보이는 석조약사여래입상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5. 4.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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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평촌리의 석조약사여래입상(牙山坪村里石造藥師如來立像)은 옛 절터에 위치한 불상이다.

전체적인 균형을 보면 상체가 짧고 하체가 길어 무게중심이 아래쪽에 있어 불균형하게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선이 아름다운 불상이다. 드물게 우수한 모습을 표현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장륙불상(1장 6척)이지만 무릎에 표현된 옷 주름이나 사실적 표현에 충실한 얼굴은 통일신라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약사신앙은 동아시아 불교 전통에서 큰 부분을차지하고 있다. 불교가 민간과 소통하는 방법중에 질병에 걸린 혹은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줄 소망을 담은 불상인 약사여래입상이 민간과 밀접하게 소통했음이 분명해 보인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이 홀로 외로이 절터에 남아서 그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양쪽 귀는 어께까지 길게 늘어져 있는데 이는 불상의 자비로움을 나타내고 있으며 얼굴의 전체적인 크기보다 입술이 작고 얇게 표현했다.

 

 

석조약사 여래입상은 보물 제5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이 절이었다는 오래된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신라 애장왕때 원효가 처음 용담사라 지었고 고려 광종때 혜명조사가 다시 건립하였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두상부분에는 곱슬곱슬한 소라 모양의 머리칼로 표현을 했다. 더 윗부분을 보면 상투모양으로 머리를 얹어 두었다.

가슴 부분에 손을 모아 약 그릇을 감싸고 있다. 이는 약그릇을 가지고 모든 중생의 질병을 구원해 주는 약사여래의 모습이 형상화되었다. 적지 않게 긴 옷을 걸친 것으로 표현하였는데 어께에서 발목까지 늘어져 있다. 특히 좌우로 옷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

 

 

 

석조약사여래입상의 특징은 머리는 나발(부처의 머리카락이 소라 껍데기처럼 틀어 말린 모양)이고 육계 (부처의 정수리에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가 있으며 상호(부처의 몸에 갖추어진 용모와 형상)는 둥근 편이라는 것이다. 이런 대형불상을 세운 것은 통일신라시대 대형 불입상의 전통인데 통일신사시대에 비해 신체의 묘사가 사실적이지 못하고 옷주름 선이 도식화된 것은 고려시대의 불상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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