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맛집(1000)/지민食客(충청도)

명재고택의 솟대 깊은 의미를 살피다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4. 10.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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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에 갔다가 만난 돌로 만든 솟대의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보고 싶었다.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돌로 만들기도 했던 솟대위에는 나무새 혹은 돌새가 잠들어 있다. 새들이 왜 그곳에 올라앉아서 자리하고 있을까? 한국 역시 지역에 상관없이 솟대를 발견할 수 있다. 논산의 고택들을 찾아가보면 솟대 하나쯤 발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솟대의 기원은 먼 샤먼의 신앙까지 올라간다. 시베리아의 샤먼역시 그들의 신앙에는 솟대가 있다. 위대한 신수 앞에 긴 소나무 장대가 있고 그곳에서는 물오리 아홉 마리가 비상한다. 시베리아 샤먼의 행사를 시작할 때 새의 모양이 있는 옷을 입는다.

 

추운땅 시베리아의 샤머니즘과 충청남도 논산 고택의 솟대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우리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는 것은 바로 장대 위의 새와 연결이 된다. 샤먼이 죽으면 새가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새를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새는 집과 마을을 지켜주며 망자의 영홍이기도 한다. 때로는 새를 조상신으로 섬기기도 한다.

 

 

논산 명재고택의 솟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하늘을 날고 싶어하는 것은 꿈이였다. 그래서 한민족도 선사시대부터 새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고구려의 삼족오, 박혁거세가 태어난 신화의 중심에도 알이 있다. 충청남도의 백제토성을 복원할 때 나무로 깍은 새가 발굴된 경우도 많다.

 

단군신화에서도 신단과 신수가 결합된 신단수의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통로에 세워진 나무가 있다. 논산 명재고택처럼 솟대가 세워지게 된것은 조선 후기 마을공동체문화의 발흥과 더불어 만들어 진것이다. 보통은 이처럼 유력가문이나 마을 입구에 홀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마을의 하당신, 상당신, 주신으로 모셔지기도 했다.

 

 

조선 후기에 보편적으로 전국에 퍼지기 시작한 솟대는 상징물이 되었다.

명재고택의 솟대에는 수년전만 하더라도 나무로 만들어졌었다. 비바람을 맞으면서 명재고택과 주변마을을 지켜주던 솟대는 때로는 새로운 솟대로 바뀌어서 임무를 교대하기도 한다.

 

일년 동안이나 힘들게 마을을 지켜주던 새들은 다시 하늘로 돌아가서 이땅을 내려다보는 것이다. 그 고단한 일을 뒤로한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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