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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아픈기억 '거제 포로수용소'

어린왕자같은 식객 2012. 2. 2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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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포로수용소는 책으로만 접근하던 내용이다. 거제도에 북한국 포로들이 수용되어 있었다는것은 역사를 배운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지만 현장을 찾아보는것은 쉽지 않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있던자리에 조성된 유적공원은 한번쯤은 들러볼만한것 같다. 포로수용소는 1950년 11월부터 고현·상동·용산·양정·수월·해명·저산지구 등 360만평에 포로수용소를 설치하여, 인민군 15만, 중공군 포로 2만, 여자포로와 의용군 3천명 등 최대 17만 3천명을 수용하였다.

 

 

거제도에 가면 시내에서 살짝 비켜난곳에 이렇게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거제도에도 CGV가 있을정도로 거제도의 중심이 바로 이곳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전쟁 중 UN군에 포로가 되었던 공산군을 수용하던 장소이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말해주는 민족역사교육의 장소로, 문화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곳이다.

흔히 바라보던 자유의 상징 머 그런 조형물이다. 총이 아주 멋지게 서있다.

이곳을 들어가는 요금은 어른이 3,000원이고 청소년은 2,000원 그리고 어린이는 1,000원씩 받고 있다. 입장시간이 있으니 잘 살펴보고 들어가는것이 좋다.

탱크라는것은 2차 세계대전때문에 유명해진 무기중 하나이다.

이당시의 정치인들과 군인들이다. 무기력한것으로 치면 이승만도 만만치 않은 지도자였다.

이쪽은 공산주의 계열의 지도자들이 나열되어 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공산주의..결국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굴복하고 말았던것인가?

 

포로로 살아간다는것은 말그대로 편하게 살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인권이라는것이 존재하지 않는곳이니까 경남 거제시 장평리,수월리 및 신현읍 양정리,고현리에 위치한 이곳을 보면 과거 우리네의 흔적이 느껴진다.

포로수용소 내에서도 유혈사태가 자주 일어나는데 갇혀 있는가운데 서로를 죽이고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탱크라는 기막힌 발명품은 1차세계대전의 영향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2차세계대전때에는 주요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독일이 초반에 강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갑사단을 제대로 활용해서 그렇다.

역사관도 준비되어 있는데 한번쯤 둘러보아도 좋을듯 하다.

 

 

 

 

 

 

 

서로를 죽이고 죽였던 상잔의 비극은 권력자들의 욕심에 의해 비롯되었다.

군대에서 자주 끌었던 찦차이다. 보통 1/4톤이라고 하는데 가벼운만큼 커브링에서 무척이나 불안한 주행이 가능하다.

 

철모로 만들어진 포로사상 대립관이다. 포로들에게 사상을 주입하던것에 대해서 전시되어 있는데 이념이라는것이 아직도 한반도에는 유효한듯하다. 한국전쟁의 아픈기억은 이땅에 살아가는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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