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하면 안동하회 마을!
경남하면 산청남사 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옛날부터 그 명성이 자자했던 이 마을은 양반마을로 또한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첫인상은 안동하회 마을처럼 친절하지는 않은듯 했습니다. 어딜 봐야 하는지 알 수없는 초행길에 남사 예담촌은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찾아서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더군요. 농촌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남사 예담촌" 은 고즈넉한 담장 너머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 마을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곳은 워낙 고관대작들이 많은곳이라서 앞에 길이 예전에는 상당히 큰길이었으나 지금은 그 규모가 예전에 비해서 작아진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곳 주변은 오래된 마을의 돌담길이라는 아름다움과 정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곳의 규모는 안동 하회마을보다는 작은편이지만 이곳 저곳의 아기자기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농촌 전통테마 마을 남사 예담촌은 변화하는 현재속에서 옛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는 배움의 휴식 터로 자리매김하려고 하는듯 합니다. 행정구역상으로 볼 때 청계를 가운데 두고 남사는 진주에, 상사는 단성에 속하였는데 그때 두 마을의 명칭이 같은 사월리였다고 합니다. 1906년에 와서 진주의 사월면이 산청군으로 편입되면서 남사도 단성군 사월면으로 산청에 속하게 되었다가 다시 1914년에 단성군이 단성면으로 격하되어 산청군에 통합될 때 두 마을은 단성면에 속한 남사마을과 상사마을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사는곳이라 고택 일부를 제외하고는 실제 나이가 드신분들이 살고 계시더군요. 이곳 남사1경에서 지민이가 사진을 한장 찍습니다. 남사마을에서는 수많은 선비들이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하여 많은 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은 빛내던 학문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은 겨울보다 봄과 가을이 아름다운곳으로 한겨울에도 운치가 있더군요.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옛 담의 신비로움과 전통과 예를 중요시하는 이 마을의 단정한 마음가짐을 담아가자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천왕봉에서 일백여리를 흘러와서 우뚝 멈춘 수려한 봉우리가 니구산인데 그 모습이 아름답고 그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적 자연 승지라고 하네요. 이곳의 돌담길과 반달모양의 마을 터를 배 모양으로 생각하여 마을의 중심부에는 그 무엇도 채우지도 않고 우물도 파는 것도 금하여 왔다고 합니다. 01 이씨고가를 찾아가는길 남사예담촌의 상징이 되어버린 X자형 회화나무 골목입구로 들어서면 이씨고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나지막한 돌담 끝에 있는 대문을 지나면 그 옛날 화려했을 사랑채와 20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는 안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태조 이성계의 사위가 살던 집이라고 합니다. 왕자의 난때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흔적은 이렇게 남아 있군요 지민이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있습니다. 지민이는 고가를 정말 많이 다녀봅니다. 안동을 비롯하여 전주 한옥마을 그리고 이곳 산청 남사 예담촌까지 안가본곳이 없습니다. 이곳을 들어가보면 사랑채, 익랑채, 곡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ㅁ자로 배치된 가운데, 왼편으로 사당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 주인이 저와 일행을 자세히 안내해준 덕분에 남사예담촌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원래 산청이 약초로 유명한 곳이라 실제로 이곳에서 약초는 팔고 있지는 않으나 저렇게 약초를 상징하는 것을 매달아 놓았다고 합니다. 주인장이 알려주듯이 집안의 부유함을 말하듯 화려하고 과장된 건축기법이 사용되었지만 그럼에도 아담한 우리네 한옥 특유의 맛이 있는 고가입니다. 이곳은 예전에 여성들은 들어오지 못했다는 바로 그사당입니다. 유교적인 잔재가 남아 있는곳이죠 이곳을 들어오는 길에 있는 회화나무는 마을 초입, 이상택 고가로 가는 입구에 있는 나무로 서로 x자로 몸을 포개고있는 것이 인상적인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심는 집안에서 훌륭한 인재가 난다고 하는데요. 회화나무의 열매는 천연염색제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하씨 고가인 분양고가 울안에는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7세 때 심었다는 마을의 길흉화복을 함께한 노거수인 600여년 된 감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한 고택은 사양정사 옆의 고가집으로 이날도 많은학생들이 이곳에서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양정사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곳을 보니 전주 한옥마을의 학인당에서 느꼈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일본식으로 지어진 고가를 보고 있자니 곳곳에 남아있는 일본의 흔적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높고 튼튼한 대문이 버티고 있는 인상적인 고가가 있는데 이곳이 바로 최씨 고가입니다. 최씨 고가는 현재 세대주인 최재기 씨의 부친이 1920년에 지었습니다. 부농이었던 주인의 상황을 말해주듯 이 고가는 사대부집을 모방하여 집안의 위세를 과시하는 화려한 모양새를 강조하였습니다. 이곳 저곳에 관심도 많지만 이쁘게 생긴돌에도 관심이 많은 지민이는 땅도 그냥 지나는 법이 없습니다. 한옥 특유의 안정적이고 소박한 멋은 없지만 곳곳에 자리한 실용적인 구조로 선조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고가라고 보여집니다. 최씨 일가의 부를 이어받을수 있다는 거북모양의 조각입니다. 이곳을 한번씩 쓰다듬으면 좋다고 하네요 저 멀리 보이는 곳은 박씨 선조 송월당 박호원을 기리며 학문연마의 장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한옥을 지어서 내려오기로 한 화가가 살기로 한 집인데 지금 한참 공사중이더군요. 그 아래를 휘감아 흐르는 사수(泗水,남사천,淸溪)가 조화를 이룬 가운데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주위를 둘러친 천혜적 자연 승지(勝地)로 쌍룡교구의 모습을 이루고 있는 산청 남사마을은 이 사수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거북이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거북바위입니다. 바로 이곳이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 종군을 시작했다는 곳입니다. 이순신의 과거 백의 종군로이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둘레길이나 다름이 없을듯 합니다. 나사재 입구인데 꼭 미니 성벽을 닮아 있습니다. 꼭 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그 요새같은 느낌도 묻어나옵니다. 이곳에 올라서 보면 산청 남사예담촌을 한눈에 바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는 재실입니다 한국적인 자연미와 다양한 성씨가 모여사는 산청 남사 예담촌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봄, 여름, 가을에 가면 볼것도 많고 춥지도 않겠지만 사람들 왕래가 적은 겨울에 가봐도 좋은곳입니다. 수백년된 나무 백년이상된 고가들이 있는 산청 남사예담촌은 놀이시설이나 워터파크에서는 느낄수 없는 또하나의 기억을 지민이 기억속에 아로새기는듯 합니다.
가구수(호)
인구(명)
경지면적(ha)
농가
비농가
남
여
논
밭
시설채소
주작목
105
30
176
164
73.6
13
10.3
딸기
현재, 문화재 제 328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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